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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국민연금 의결권이 사달이 안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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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바뀔 모양이다. 지금은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가 주로 결정한다. 다만 찬반이 곤란한 안건만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의뢰할 수 있다. 정부는 이걸 의결권전문위가 주도하는 쪽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다음달 2일 기금운용위를 열어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처리한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운용.관리를 총괄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정부가 바꾸겠다면 막을 방도가 없다. 다만 바꾸기 전에 몇 가지 생각할 게 있다.

의결권 지침을 바꾸는 이유는 외부 압력을 막는 데 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다. 그 결정은 내부 투자위원회가 내렸다. 그 뒤 국민연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대로다.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은 감옥에 갇혔다. 후임 본부장도 임기 만료 전에 사표를 냈다. 그 자리는 여섯달째 비어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지침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기금운용본부가 가진 권한을 의결권전문위로 옮기는 것이 올바른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의결권전문위라고 외부 압력을 철통같이 막아내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상 의결권전문위는 기금운용위 아래 있다. 그런데 기금운용위원장은 다름 아닌 복지부 장관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은 숙명적으로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결권전문위 구성도 허술하다. 지금은 9명 이내에서 기금운용위 위원 추천을 받아 복지부 장관이 위촉하게 돼 있다. 중립성 확보엔 턱없이 모자란다.

이런 규정을 그냥 두고 의결권전문위에 더 큰 힘을 실어주면 최순실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 무색하다. 진정으로 외부 압력을 막고 싶다면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기금운용본부, 나아가 기금운용위가 독립적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 100% 자율을 보장하되 책임도 온전히 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 지금은 시어머니 등쌀에 투자 전문가들이 기를 펴지 못한다. 그러니 기금운용본부장도 뽑지 못하는 게 아닌가.

국민연금은 머잖아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곧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 국민연금은 증시의 큰손이다.
웬만한 대기업.은행에선 다 대주주다. 의결권을 행사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 이때 큰 사달이 나지 않으려면 기금운용본부와 기금운용위가 독립성을 갖추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