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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재용 2심 선고, 정치 빼고 법리만 보라

벤처協 '합리적 판단' 탄원.. 특혜도 불이익도 없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에 대한 항소심(2심) 선고가 5일 내려진다. 1심 판결이 나온 지 5개월여 만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2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5년 징역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이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지 나라 안팎에서 관심이 크다.

최대 쟁점은 뇌물죄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고 본다. 1심 재판부도 이를 인정했다. 이때 나온 논리가 이른바 '묵시적 청탁'이다. 이 부회장이 명시적으로 대놓고 청탁을 하진 않았지만,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에 대해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삼성 측은 묵시적이든 명시적이든 청탁 자체를 부인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나는 외아들이고, 후계 자리를 놓고 (형제간) 경쟁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제가 왜 뇌물까지 줘가며 승계를 위한 청탁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재용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 경영권을 이을 것이란 관측은 상식에 속했다. 시장에선 경영권 승계를 시간문제로 봤다. 이 회장이 오래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재용 재판'엔 정치색이 짙게 배어 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타이밍이 아주 나빴다. 이듬해 최순실 사태로 나라가 들끓는 가운데 국회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재용을 비롯한 재벌 총수들은 줄줄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이어 2017년 3월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을 파면했고, 5월엔 정권이 바뀌었다. 이재용 사건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결탁한, 정경유착의 전형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법리를 중시하는 이들은 줄곧 신중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초 특검이 이 부회장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은 엎치락뒤치락했다. 또 1심 법원은 형량을 특검 구형보다 7년 적게 매겼다. 삼성이 K.미르스포츠재단에 낸 후원금은 강압에 따른 무죄로 판단했다. 특검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했다. 그러나 범행 직후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스모킹 건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른바 묵시적 청탁을 놓고도 논란이 분분하다.

이제 '이재용 재판'에서 정치색을 벗길 때가 됐다. 오히려 해외에서 재판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잘못을 묵인하자는 게 아니다. 재벌 총수라고 특혜를 베풀어선 안 된다. 다만 재벌 총수라고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서도 곤란하다.
벤처기업협회는 최근 서울고법에 합리적 판단을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지 1년 가까이 지났다. 항소심 재판부가 오로지 법리에 따라 정치와 무관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