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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에스토니아의 기적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북유럽 발트해에 면한 나라들이다. 우리에게 멀어 보이는 세 나라의 역사적 공통점은 '약소국의 비애'였다. 러시아와 독일, 스웨덴, 폴란드 등 인접 강국들의 침탈에 시달리면서 국민들은 세계 곳곳에서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을 곱씹기 일쑤였다. 한국인 아버지와 결혼한,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쓴 이문열의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에서 그들의 신산한 삶이 읽힌다.

이 세 나라 중 에스토니아에서 극적 반전이 이뤄지고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즈음해 방한한 케르스티 칼률라이드(49) 대통령이 육성으로 전하는 변화상이 눈부시다. 그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 부자나라(2016년 1인당 국내총생산 1만7727달러)가 됐다는 뜻만이 아니다. 경제.사회적 체질개선이 더 놀랍다. 1991년 소련(현 러시아)으로부터 독립할 무렵 전화기를 가진 세대가 절반도 안 됐던 나라가 세계 제1위 인터넷 전화회사 스카이프를 키웠으니….

주변국에 이리저리 치이던 나라가 전 세계 부자들이 돈을 싸들고 들어오는 곳이 됐다면? 그야말로 뽕밭이 바다로 변한 격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보다 디지털 아이디(ID)를 먼저 부여하는 등 130만명의 국민을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시켜 일군 기적이다. 여기엔 전자영주권을 발급하고 법인세를 '0'으로 낮추는 등 에스토니아 정부의 '발상의 전환'도 큰 몫을 했다. 나토 사이버사령부를 수도 탈린에 유치하는 등 안보조차 '디지털 퍼스트'를 중시할 정도로 말이다.

에스토니아의 젊은 여성 대통령은 지난 7일 경기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를 방문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협력을 한국 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먼저 산업화.정보화를 이룩했던 우리가 주춤거리는 사이 '디지털 미러클'을 일군 에스토니아에서 외려 배워야 할 판이다. 수도에 조성된 '탄틴밸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버금갈 정도로 스타트업의 요람이 된 지 오래라고 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랄알타이어를 쓰면서 천연자원이 부족한 에스토니아가 제시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 시대의 생존법을 주목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