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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기금운용본부장 뽑긴 뽑아야 하지만

독립성은 여전히 취약.. 외부압력 막을 수 있나

국민연금공단이 19일 기금이사, 곧 기금운용본부장을 새로 뽑는 공고를 냈다. 지난해 7월 강면욱 본부장이 사표를 낸 지 7개월 만이다. 615조원(2017년 11월 기준)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공적연금 가운데 세계 3위다. 가입자 2200만명의 노후가 달려 있다. 기금운용본부장은 최고투자책임자(CIO)다. 군대로 치면 일선 사단장과 같다. 워낙 중요한 자리인 만큼 국민연금법은 기금이사를 뽑는 절차를 따로 규정한다(제31조). 이런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순 없다. 하지만 누가 새 본부장이 되든 소신을 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과연 유능한 인물이 응모할지부터 미지수다. 강 전 본부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났고, 그 전임자인 홍완선 전 본부장은 감옥에 갇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을 둘러싼 정치적 파도가 기금운용본부를 덮쳤다. 과거 기금운용본부장에겐 '자본시장 대통령'이란 별칭이 붙었다. 국민 노후자금을 관리하고 불린다는 보람도 있었다. 지금은 대통령은커녕 독이 든 성배가 됐다. 최근의 장기 공석도 능력 있는 인물이 죄다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역사적 교훈을 깡그리 무시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기금운용본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곤욕을 치렀다. 사법부는 권력과 정부가 기금운용본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마땅히 운용본부를 외부압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어야 옳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7개월을 허송세월했다. 국민연금공단도 마찬가지다. 운용본부와 본부장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어떤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국민연금 운용은 최상위기구로 기금운용위원회가 있다. 복지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이다. 전창환 교수(한신대)는 "심하게 표현하면 기금운용위원회는 복지부의 들러리에 가깝다"고 말한다('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중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과 경제민주화'). 이런 기금운용위가 자산운용.배분 전략을 세우면 기금운용본부가 이를 집행한다. 본부장도 복지부 장관 승인을 거쳐 국민연금 이사장이 임명한다. 본부.본부장의 소신을 보장하는 장치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다.


이왕 모집 공고가 났으니 유능한 본부장이 뽑히길 바란다. 그러나 현행 지배구조 아래선 누가 되든 한계가 뚜렷하다. 2년 계약에 1년 단위로 연장하는 임기도 너무 짧다. 최소한 임기만이라도 정권 교체와 상관 없이 길게 보장할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