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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장에 듣는다] 시정을 향한 편지

[자치단체장에 듣는다] 시정을 향한 편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맹활약했던 박찬호 선수가 최근 한 종교방송에 출연해 편지 한 통에 얽힌 사연을 공개했다.

IMF 외환위기 때 쫄딱 망하고 자살하려던 한 사업가가 박찬호 선수의 경기를 보고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는 감사편지였다고 한다. "천하의 박찬호도 투수 같지도 않게 공을 엉망으로 던지다가 며칠 뒤엔 매우 잘 던져 찬사를 받는데, 혹시 내 인생도 다시 도전하면 박찬호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사업가는 밑바닥부터 다시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재기에 성공해 수많은 직원을 거느린 기업의 사장이 됐다고 한다. "당신은 삶을 포기했던 나에게 새로운 삶을 준 영웅이다"라며 감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슬럼프에 빠져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박찬호에게 오히려 힘을 주는 기폭제가 됐다고 한다. 한 사람의 마음을 담은 감사편지는 긍정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지난 1997년 개봉한 영화 '편지'는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홀로 남게 될 아내를 위해 편지를 쓴 애틋한 사랑이야기다. 자신이 죽기 전 아내를 위해 여러 통의 편지를 미리 써두고 옆집 아저씨에게 자신이 죽으면 아내에게 부쳐달라고 전한다. 편지는 절망에 빠진 아내에게 삶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되었고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도와준다.

20세기 초 독일의 유명한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시 방황하던 무명의 문학청년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신이다. 삶과 예술, 고독과 사랑 등의 문제로 고뇌하던 젊은 청년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내용이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릴케의 편지는 오늘날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청년들에게도 꼭 필요한 조언이자 격려이다.

시장 재임 3년여 동안 참 많은 편지를 받았다. "학교 통학로 안전을 확보해 줘 고맙다. 소음.분진 피해를 해결해 줘 감사하다. 고질 민원이 해소돼 고맙다" 등등 다양하다.

시정을 항의하는 편지도 있다. 연령층도 어린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70대 어르신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자치단체장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시민으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을 때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2년 전 시골의 한 촌로로부터 받은 것이다. 마을에 거동을 못하고 누워서 지내는 90세 할머니가 있었는데 면사무소 공무원들이 찾아와 대소변을 치워주고 몸을 씻어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방도 청소하고 더러워진 옷과 이불을 깨끗이 빨아 입혀주고 갈아줬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마을주민들도 할머니 돕기에 합세해 마을 분위기가 더욱 따뜻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인에 사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용인시민인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도 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의 도시 용인이다. 시정철학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시장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시민들로부터 감사편지를 받고, 더 많은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

정찬민 용인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