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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공직자를 복지부동하게 해선 안된다

정책에 적폐 딱지 붙여서야 실무진엔 신분을 보장해야

요즘 세종시의 관가가 술렁거리는 모양이다. 중앙부처의 한 정책 담당 과는 최근 소속 사무관 네 명 가운데 두 명이 휴직했다고 한다. 각기 개인 사정은 있을 게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따르는 정책을 기피하는 징후일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 혹여 새 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한 공직사회에 대한 전방위 조사나 군기 잡기와 맞물린 결과라면 더 심각한 사태다. 우리는 정권 차원의 역점정책을 수립하는 고위직은 몰라도 이를 수행하는 실무직은 확실한 신분보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뒷돈 수수 등 비위나 민간에 군림하는 '갑질'을 저지르는 공무원이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응당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와 노선이 달랐던 지난 정부들의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 데 동참했다고 해서 처벌하거나 물먹이는 건 지나친 처사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우려할 만한 조짐이 보인다. 예컨대 위안부 합의에 관여했다고 해서 정책 결정자도 아닌 외교부 실무자들을 임기 도중 소환하고, 상급자의 국정교과서 추진 지시를 이행한 교육부 하위직까지 수사 의뢰하는 것 등이 단적인 사례다. 적폐청산위를 가동해 온 다른 부처들도 뒤숭숭하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는 현 정부 국정운영에도 결국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창의력을 발휘해봤자 차기 정부에서 문책 사유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면 관료사회가 복지부동에 빠져드는 건 불문가지다.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탈원전이나 최저임금 업무 등도 차후 역풍이 우려된다면 어느 공무원인들 소신을 갖고 임하겠나. 5일자 조간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후환이 없게 상사의 지시를 녹음해놔야겠다"는 한 중견 공무원의 푸념이 사실이라면 가공할 사태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사학스캔들처럼 실무 관료가 녹음.기록하는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도 표면화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은 개발연대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간영역이 신장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관료집단은 국가와 사회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해야 한다. 하물며 공공부문을 확대하려는 게 현 정부의 기조 아닌가. 관료사회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전문분야별로 공공성을 발휘하도록 공직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관료들이 애국가의 한 소절처럼 오직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제대로 된 국가 리더십임을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