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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끝내 권오준 교체, 주주들에 부끄럽다

외국인 지분율 절반 넘어.. 정부 간섭 악순환 끊어야

포스코 권오준 회장이 끝내 물러난다. 권 회장은 18일 열린 긴급 이사회에서 사의를 표했다. 그는 지난 2014년에 회장이 됐고,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2차 임기만료(2020년)를 2년 앞두고 자리를 내놨다. 권 회장은 "저보다 열정적이고 능력 있고 젊고 박력 있는 분에게 회사의 경영을 넘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또 이렇게 됐다. 지난 2000년 민영화 이후 포스코 회장 자리는 정권 몫으로 취급됐다. 혹시나 했지만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포스코는 민간회사다. 외국인 지분율이 57%나 된다. 지난해 주총에서 주주들은 권 회장 연임에 찬성했다. 다른 이유 없다. 실적이 좋기 때문이다. 포스코 영업이익은 2015년 2조4100억원에서 2016년 2조8400억원, 2017년 4조6200억원으로 불었다. 주가도 꾸준한 오름세다. 포스코의 주인인 주주들로선 딱히 권 회장을 내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권 회장은 이달 초 창립 50주년 기념식도 성대하게 치렀다.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68년에 매출 500조원, 영업이익 70조원을 이룩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외국인 주주들한테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포스코 경영진 교체는 수난의 연속이다. 민영화 전엔 정부.산업은행 지분이 많았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민영화 뒤에도 정부는 포스코를 '민영화된 공기업'으로 보는 시각을 버리지 못했다. 이는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김대중정부가 출범하자 김만제가 나가고 유상부가 들어왔다. 노무현정부 때는 유상부가 나가고 이구택이 들어왔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이구택이 나가고 정준양이 들어왔다. 박근혜정부 때는 정준양이 나가고 권오준이 들어왔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 권오준이 나갔다. 후임은 현 정부 몫이다.

전임 정준양 전 회장은 두 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과 얽힌 뇌물 재판이 있고, 부실기업을 잘못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받는 배임 재판이 따로 있다. 두 재판 모두 1.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미 명예는 땅으로 떨어졌다. 이런 마당에 경찰은 지난 17일 KT 황창규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러 조사했다. 권 회장으로선 차라리 지금 자리를 내놓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포스코처럼 딱히 주인이 없는 기업엔 분명 승계 리스크가 있다. '셀프 연임'을 둘러싼 논란도 따른다.
그렇다면 정권교체 주기에 맞춰 사람만 바꿀 게 아니라 투명한 승계절차를 세우는 게 먼저다. 권 회장 사임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번 기회에 승계 룰이라도 제대로 세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