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

[fn논단] 한국식 경제모델의 종언

[fn논단] 한국식 경제모델의 종언

"스타트업 수가 적은 것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식 경제모델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주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이 던진 쓴소리다. 그는 1986년부터 한국을 100번 넘게 찾았다. 그의 비판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소르망은 2015년에도 "한국이 유럽과 같은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규제개혁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판이 일찍 닫힌 한국 경제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올 초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잠재성장률이 2020년 2.2%, 2030년엔 1%대로 추락한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급속한 고령화와 서비스 부문의 낮은 생산성, 경직된 노동시장 등 구조적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작년 11월 한국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 신세라는 진단을 내놨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 게 문재인정부 탓은 아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성장세는 당연히 꺾인다. IMF의 지적대로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가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다. 담보대출 위주의 은행권에 '메기' 역할을 기대했던 인터넷은행은 금산분리 규제에 발이 묶였다. 이동통신 시장의 과점체제를 완화하자는 취지로 출범한 알뜰폰은 통신비 규제 때문에 수익성이 더 나빠졌다. 경쟁체제를 도입했던 철도부문은 다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소르망은 "새로운 일자리 5개 중 4개는 스타트업에서 나온다"며 창업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 스타트업의 지옥이다. 카풀서비스업체 풀러스는 이용시간을 낮 시간대로 늘리려 했지만 정부가 불법이라며 막았다. 세계 100대 스타트업 사업모델의 절반이 한국에선 불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공유경제에 맞게 법까지 고친 미국은 에어비앤비와 우버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하나로 월간 주문이 1800만건인 '배달의민족'을 규제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온.오프라인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든 공은 인정하지 않고 그 가치를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프랜차이즈업계는 배달앱 때문에 치킨시장 전체가 커졌다고 분석한다.

정부도 규제의 심각성을 모르진 않는다.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이 주재한 혁신성장회의에서 김동연 부총리가 '안돼 공화국'이라고 말할 정도다. 규제는 교차로의 신호등과 같다. 사고도 잦고, 비용이 든다. 신호등이 없으면 교통사고가 늘 것 같지만 반대다. 올 초 정부가 신호등을 없앤 회전교차로 88곳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교통사고 건수와 사상자 수가 절반 넘게 줄었다.
교차로를 지나는 시간도 15%나 감소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정부는 마음껏 연구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혁신성장 생태계를 조성하고, 신기술.신제품 개발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말대로 혁신성장 생태계를 만들려면 정부 규제와 간섭부터 줄이는 게 급선무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