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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인권정책까지 기업을 걸고넘어지나

최저임금 1만원 못 박아.. 기본계획인지 공약인지

국가 인권정책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계획에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추진'이 포함됐다.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18~2022년) 초안을 공개했다. 이 중 '최저임금 합리화와 감독 강화'라는 항목 아래 관련정책을 두루 나열했다. 최저임금 인상 보완책으로 일자리 안정기금을 신설하고, 원.하청 간 불공정한 거래구조를 개선하며, 신용카드 수수료를 낮춘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고용노동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법무부가 노동권 보장 차원에서 그대로 수용한 듯한 모습이다.

인권기본계획에 최저임금 시급(1만원)을 못 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최저임금은 인권과 관련이 깊다. 19세기 말 뉴질랜드는 저임 착취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보호하려 근대적 최저임금제를 처음 도입했다. 호주가 바통을 이었고, 20세기 들어 지구촌 주요국들은 거의 빠짐없이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였다. 우리도 30년 전인 1988년부터 최저임금법을 시행 중이다.

다만 인권기본계획에 '1만원'이란 숫자를 명시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법무부는 5년마다 중장기 인권계획을 짠다. 어느 분야든 기본계획은 큰 방향만 제시하는 게 보통이다. '1만원'을 집어넣는 순간 기본계획이 아니라 대통령 공약 또는 고용부 신년 업무보고 같은 인상을 준다. 게다가 시점도 혼란을 부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3차 기본계획은 2022년까지 시행된다. 단순히 해석하면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추진' 시한이 2022년까지 미뤄졌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인권기본계획이 신용카드 수수료를 언급한 것도 어쩐지 어색하다. 최저임금은 고용부 소관 업무다. 하지만 카드 수수료는 고용부 영역이 아니다. 수수료를 조정할 권한은 금융위원회에 있다. 더 크게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 있다. 인권과 최저임금은 연관성이 높지만, 인권과 카드 수수료는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만사 인권에 걸리지 않을 게 없다.

마찬가지로 기업 인권을 거론한 것도 지나치다. 초안은 '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기업 활동은 인권친화적으로 수행돼야 한다'는 문구를 처음으로 담았다. 그러잖아도 기업들은 문재인정부의 친노동, 반기업 정책에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런 마당에 인권 정책까지 기업을 걸고넘어졌다. 기업들이 반인권 행위를 저질러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사방에서 기업을 옥죄는 정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니까 하는 말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돈을 벌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다. 어떤 정책을 펴든 이 점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