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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란 핵협정 깬 美, 경제 파장 주시해야

트럼프 제재 재가동 예고.. 한.이란 경협 차질 불가피

미국이 이란과 맺은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서 "이 협정으로는 이란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란 핵협정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이던 2015년 여름에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보리 5개국과 독일, 유럽연합(EU)이 서명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는 이듬해인 2016년 1월에 풀렸다. 미국을 뺀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협정을 준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이 빠진 터라 실효성은 뚝 떨어졌다.

우리로선 두가지가 걸린다. 트럼프의 핵심 측근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 핵협정 파기에 대해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북핵 폐기를 놓고 한반도가 긴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돌연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또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 전화통화를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두번째로 평양을 찾았다. 일본 도쿄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만났다. 볼턴 보좌관은 이란 핵협정 파기가 "김정은과의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이란 핵협정 탈퇴가 부를 경제적 파장이다. 미국은 이르면 90일, 늦어도 180일 뒤엔 이란을 겨냥한 경제제재를 재가동할 방침이다. 과거 이란은 전례없는 제재로 고역을 치렀다. 생명줄이나 다름 없는 원유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유엔 제재와 별도로 미국은 독자적인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시했다.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이나 은행은 미국 은행과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미국 은행과 거래가 끊기면 사실상 국제 금융시장에서 쫓겨나는 꼴이다.

당시 한국도 어려움이 컸다. 간신히 미국의 양해를 얻어 이란에서 원유를 들여왔지만 그나마 양이 푹 줄었다. 달러 결제는 안 된다고 해서 이란 중앙은행과 원화 결제 계좌를 트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그러다 2년 전 제재가 풀린 뒤 한.이란 관계는 정상화의 길을 밟았다. 그해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이란을 방문했다. 건설사들은 수조원대 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 이란행 수출도 아직 예전만은 못하지만 꾸준한 회복세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 핵협정을 깨면서 이란과의 경협은 벽에 부닥쳤다.

국제 유가 움직임도 주목해야 할 변수다.
이란산 원유 공급이 끊기면 기름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유가가 미국발 긴축과 맞물리면 한국 경제에 좋을 턱이 없다. 미국이 제재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기 전에 우회로를 뚫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