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김상조식 재벌개혁, 소통이 돋보인다

한국경제 일군 소중한 자산,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 없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0일 삼성전자 윤부근 부회장 등 10대 그룹 전문경영자들을 만났다. 이런 성격의 모임은 지난해 6월과 11월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재계와 소통 측면에서 김 위원장은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재벌을 무조건 윽박지르지 않으려는 합리적 자세가 돋보인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재계는 김 위원장이 뭘 원하는지 안다. 김 위원장도 재계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안다. 양쪽이 꾸준한 소통으로 해법을 찾아가기 바란다.

김 위원장은 이날 상의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삼성그룹의 현 소유지배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다. 삼성생명은 보험, 곧 금융사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는 제조업, 곧 비금융사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르면 삼성생명을 삼성물산.삼성전자에서 떼어놓는 게 맞다. 그래야 행여 제조업에서 생긴 부실이 금융부실로 옮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27%를 보유하고 있다. 시가로 27조원 규모다. 우선 금액이 천문학적이다. 또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경영권이 흔들려서도 안 된다. 더구나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가 부실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다. 김 위원장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 부회장의 결단을 촉구하면서도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리적 판단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꼭 1년이 됐다. 정부 부처마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기업들을 압박한다. 법무부는 상법 개정안을 만지작거린다. 금융위원회는 삼성.한화.미래에셋 같은 금융그룹 지배구조를 손보겠다고 벼른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작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뒤늦게 '분식회계' 뒤통수를 맞았다. 기업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악재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그나마 재벌개혁의 야전사령관이라 할 김 위원장이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 다행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경제민주화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지만 우리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 경제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특히 대기업이 큰 역할을 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벌개혁은 이 '소중한 자산'을 잘 수리하는 선에 그쳐야 한다. 김 위원장은 헤지펀드 엘리엇과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편안을 놓고 맞설 때 현대차 편에 섰다. 맹목적인 재벌개혁론자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