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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플리바게닝의 부작용, 허위자백

[차장칼럼] 플리바게닝의 부작용, 허위자백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수사기관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범죄를 증언하면 그 대가로 처벌을 감경해주는 '플리바게닝' 도입을 논의 중이다.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일반화돼 있는 플리바게닝은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 가운데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에 도입됐다. 범죄 수법은 갈수록 은밀해지는 반면 피의자 인권은 강화돼 예전보다 수사가 어려워졌다는 수사기관의 푸념이 늘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증거 확보에 도움을 줘 수사나 재판 절차가 간소화될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현재 플리바게닝과 유사한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의 폐해가 대표적이다. 1996년 국내에서 처음 도입된 리니언시는 여러 차례 손질을 거쳐 현재 사업자가 담합한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신고하거나 증거 제공 등의 방법으로 조사에 협조한 경우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고 2순위 신고자에게는 과징금의 50% 감면 혜택을 준다. 강제조사 권한이 없는 공정위 입장에서는 은밀히 자행되는 담합행위를 적발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업 입장에서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자칫 수십억,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라도 하면 몇 년치 영업이익을 날려버릴 수 있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먼저 자진신고를 해버리면 처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종종 허위자백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전언이다. 경쟁사이지만 동종업계에서 일하다 친해진 사람 간 친목모임을 가졌는데도 담합으로 의심돼 조사가 시작되는 경우 추후 불이익을 우려해 허위로 자진신고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수년 전 식품회사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해당 회사는 담합을 하지 않았다며 억울해했지만 1순위 신고자로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혜택 때문에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자는 의견을 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플리바게닝이 정식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이 같은 허위자백은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특히 뚜렷한 물증이 없고 주변 인물들의 진술 위주로 증거가 짜인 정치보복성 수사의 경우 피의자는 불리한 여론 탓에 혐의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고 사실관계를 다투는 전략 대신 허위자백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비영리 인권단체인 '이노센스 프로젝트'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년간 유죄가 확정된 사건을 재검증한 결과 290명에 이르는 피고인이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다.
유죄판결에는 피고인의 허위자백이 결정적 증거로 사용됐다. 플리바게닝은 분명 수사편의 증대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섣부른 제도 도입은 되레 실체적 진실 발견을 요원하게 만들 수도 있는 만큼 부작용을 방지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