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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현대車 개편안 철회, 경영권 방패도 줘야

엘리엇 공세에 한발 물러서.. 시장과 소통도 숙제로 남아

현대차그룹이 21일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지난 3월 말 개편안을 내놓은 지 54일 만이다. 오는 29일 열릴 예정이던 현대모비스 임시주총도 취소됐다.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은 "주주, 시장과 소통이 부족했다"며 "개편안을 보완하고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1라운드는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완승이다. 지난 4월 초 불쑥 나타난 엘리엇은 현대모비스 지분 1.6%를 바탕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현대차가 요구에 응하지 않자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 같은 외국계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같은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도 엘리엇 편에 섰다.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48%에 이른다. 3년 전 삼성물산 합병 때 치도곤을 당한 국민연금도 내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9.8%를 가진 2대주주다. 이렇듯 주총 승리가 불투명해지자 결국 현대차가 물러섰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난처해졌다. 공정위는 현대차 개편안에 '긍정적'이란 평가를 내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국회 답변에서 같은 말을 했다. 개편안을 따르면 4개 순환출자가 풀린다. 재벌개혁을 지상과제로 삼는 김 위원장이 이를 마다할 리 없다. 게다가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사재를 들여 주식을 사고 조(兆) 단위 세금도 내기로 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엘리엇이 공세를 펼 때 현대차 역성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도 김 위원장도 엘리엇, 곧 시장을 넘어서지 못했다.

엘리엇은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소수 지분으로 시장을 쥐락펴락한다. 3년 전 삼성물산을 물고 늘어지더니 이젠 현대차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재벌이 엘리엇의 먹잇감이 된 꼴이다. 다른 한편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지 냉정히 생각할 때가 됐다. JP모간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들은 미국 기업을 좍 훑은 뒤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한국은 황금어장이다. 지배구조가 낡은 데다 시장경시 풍토가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벌처펀드에 빌미를 주는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무방비로 당할 순 없다. 투명성을 높여나가되 경영권만은 지켜야 한다. 지난주 상장사협의회는 "상시적인 경영권 위험은 국가경제에 큰 걸림돌"이라며 "방어수단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을 도입하고,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현대차는 물론 정부에도 큰 교훈을 남겼다. 엘리엇 때문에 재벌개혁 로드맵도 흐트러졌다. 개혁은 하되 경영권이 위태로워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