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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민연금, 기업 일에 시시콜콜 참견마라

독립성 확보하지 못하면 무슨 말을 해도 오해 불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며 "기금운용본부가 공개서한 발송, 대한항공 경영진과의 면담 등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5월 30일 열린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다. 박 장관과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진 선량한 관리자로서 할 말을 한 것처럼 보인다. 먼저 대한항공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총수 일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2.60%를 갖고 있다.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반대한다. 최순실 사태가 남긴 교훈이 무엇인가. 정부 또는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뒤에서 조종하면 동티가 난다는 것이다. 3년 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여러모로 이번 대한항공 사례와 다르다. 하지만 국민연금 뒤에 정부 또는 정치권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가만히 뜯어보자. 문재인정부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김성주 전 의원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보냈다. 이어 국민연금은 지난해 11월 KB금융 주총에서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에 찬성표를 던졌다. 오는 7월부턴 스튜어드십 코드, 곧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지침을 도입하려 한다. 복지부 장관이 대한항공에 보낸 '경고'는 이 같은 흐름에서 나왔다.

우리는 본란에서 국민연금이 무슨 일을 하든 독립성 확보가 최우선 과제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국민연금에 밴 정치색을 지우려면 지배구조부터 손을 봐야 한다.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을 맡는 현행 구조 아래선 독립성 확보가 어렵다. 이 점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구자다. 노 전 대통령은 기금운영위를 독립시키고,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 지금이라도 노무현안(案)을 되살렸으면 한다.

주주행동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곧 캘퍼스(calPERS)를 예로 든다. 캘퍼스가 '포커스 리스트'에 올린 기업들은 바싹 긴장한다. 하지만 캘퍼스는 정치색 제로다. 오로지 가입자 이익만을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사장, 기금운용 책임자를 바꾸는 일도 없다.

63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에 한국 자본시장은 너무 좁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국민연금이 1대 주주 또는 2대 주주가 아닌 곳을 찾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자꾸 국민연금을 앞세워 경영에 간섭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열달째 공석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국민연금은 세계 3위 규모를 자랑한다. 덩치에 걸맞게 골목대장 노릇은 그만두고 밖으로 더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