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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몰매 맞는 한진 … 과잉수사 멈추길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기업의 기마저 꺾으면 곤란

기업 때리기가 지나치다. 기업 하나를 놓고 검찰, 경찰은 물론 법무부, 교육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관세청까지 나섰다. 국민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까지 끼어들었으니 말 다했다. 마치 정부합동수사본부라도 꾸려진 듯하다. 기업이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 벌은 죄에 합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거칠게 몰아붙여선 어떤 기업도 기업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지 않다.

법원이 냉정을 유지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서울중앙지법은 4일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 전 이사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먼저 두 딸이 물의를 빚었고, 그 불똥이 이 전 이사장에게 튀었다. 그에게 흠이 없다는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 전 이사장이 저지른 '갑질'을 증언했다. 이를 근거로 검경은 폭행, 업무방해, 모욕 등의 혐의로 이 전 이사장을 구속하려 했다. 하지만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태껏 이 전 이사장 측 해명은 깡그리 무시됐다. 지난달 초 한진그룹은 A4 다섯장 분량의 자료를 냈다. 18개 항목에 걸쳐 의혹을 부인 또는 반박하는 내용이다. 지난달 24일엔 자택 경비원을 하인처럼 부렸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명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묻혔다. 지금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영장을 심사한 판사의 말대로 '다툼의 여지'는 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명희 구속영장 기각? 이게 나라입니까?" "대한항공 일가 전원의 구속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랐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씨를 즉각 구속하라"는 성명을 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책임이 크다. 온 식구가 갑질 논란에 밀수, 탈세, 대학 부정편입 의혹에 휘말렸다. 무엇보다 한솥밥을 먹던 회사 직원들이 등을 돌린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당사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다른 한편 여론에 편승한 과잉수사는 없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문재인정부는 재벌개혁,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어떤 기업이든 한번 걸렸다 하면 몰매를 맞는다. 이래서야 기업의 과감한 투자, 좋은 일자리를 바랄 수 없다.
헌법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한다. 적어도 양쪽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듣고 사리를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그만둘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