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여야, 지방선거 민의 긴 눈으로 헤아리길

승패를 아전인수로 해석해 대결정치로 치달아선 곤란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 각 17명의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226명의 기초단체장 및 총 3751명의 광역·기초의원 당선자를 가리는 개표가 14일 새벽까지 진행됐다. 출마자들이야 손에 땀을 쥐며 뛰었겠지만, 여론조사상 선거전 초반부터 여권 후보들이 앞서가면서 열기는 시들했다. 애초부터 선거판이 여당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기 때문일 듯싶다. 다만 지방선거는 기본적으로 내 지역 일꾼을 뽑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종밭이다. 그렇다면 여야는 선거의 승패를 굳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민심이 가리키는 시대정신을 겸허히 받드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축제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헌사가 무색해졌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 간 핵 담판이 벌어지는 등 국민적 관심을 끄는 빅 이슈에 묻히면서다. 메이저리그 격인 광역단체장 선거전 초반부터 더불어민주당이 독주체제를 굳히면서 유권자의 관심이 엷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탄핵된 박근혜정부의 여당이라는 원죄를 안은 자유한국당이 광역단체장 3곳에서 겨우 명맥을 잇는 초반 판세와 함께 "해보나 마나 한 선거"라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다.

그러다보니 유권자들은 담담한데 후보자들과 여야 정당들이 사생결단하는 식이었다. 여당이 한반도 평화정착론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야권이 청년취업난 등을 소재로 경제심판론을 제기한 건 그렇다 치자. 여야나 후보 간 사탕발림식 인기영합 경쟁은 가관이었다. 여당의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연루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이어 선거 종반 부각된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와 여배우 간 스캔들이 진실 규명보다 말초적 흥미와 편가르기만 부추기며 선거판이 혼탁해진 것도 문제였다.

사전투표율이 20%를 넘어서는 등 유권자들이 높은 주권의식을 보여줘 다행이다. 정치권도 투표함 뚜껑이 열리며 드러난 표심을 나침반으로 새 진로를 모색할 때다. 일각에선 이번 12곳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를 토대로 성급히 정계개편을 도모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민심과 동떨어진, 공급자 시각의 정치공학일 뿐이다. 70년 가까이 적대관계였던 남북이 평화 공존을 추구하려는 터에 대결 일변도 정치는 곤란하다.
야권이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면 그 원인을 성찰해 문재인정부를 뛰어넘을 비전부터 세우고 딴죽보다 합리적 대안을 우선하는 품격 있는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체장 몇 석을 더 건진 여당도 이를 기화로 '답은 정해졌으니 따라만 해'라는 식의 독선을 경계해야 한다. 여야는 '백성은 물과 같아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경구를 곱씹으며 다음 총선·대선을 기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