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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주52시간제 연말까지 계도, 참 잘했다

경총 건의 수용은 이례적.. 유능한 진보로 거듭나길

정부가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제에 6개월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같은 기간 사업주 처벌도 미룬다. 20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회의에는 이낙연 총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19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6개월 계도기간을 달라는 건의문을 정부에 냈다. 바로 이튿날 당·정·청이 이를 수용했다. 참 잘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사용자 단체인 경총은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다. 그런 경총의 건의를 집권당과 정부, 청와대가 선뜻 받아들였다. 이례적이다. 6·13 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뒤 집권세력의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1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통령에게가 아니라 국민에게 유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한편으로는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두려운 것"이라고도 했다. 자만을 경계하고 겸손을 강조한 것이다. 6개월 계도 수용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특히 이낙연 총리가 주목된다. 이 총리는 "(경총 건의를)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충정으로 받아들인다"며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 현장에서 빚어지는 혼란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 총리는 지난해 김영란법 개정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 때도 개정을 지지했다. 이에 힘입어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농수축산물에 한해 선물비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리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바꿨다. 이념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이낙연 스타일은 문재인정부에서 특히 돋보인다.

당·정·청 회의에선 또 속도감 있는 규제혁신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 등 관련법을 서둘러 입법화하기로 했다. 이 또한 반가운 일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9일 상의 세미나에서 "내년(2019년) 이맘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특히 고용 측면에서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현 정부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혁신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김동연 부총리가 줄기차게 강조한 내용이다. 당·정·청 합의가 립서비스에 그쳐선 안 된다. 이른 시일 안에 시장이 깜짝 놀랄 만한 규제혁신책을 내놓길 바란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집권세력이 이념색 짙은 국정과제를 몰아붙일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정책을 보니 괜한 걱정 같다. 과거 참여정부엔 무능 딱지가 붙었다.
그 뒤 보수정권 9년이 이어졌다. 이제 유능한 진보가 나올 때도 됐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