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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별세〕실세 총리· 9선의 정치인 · 민주정부 공동창업자... 한국 현대사의 풍운아 JP

〔JP별세〕실세 총리· 9선의 정치인 · 민주정부 공동창업자... 한국 현대사의 풍운아 JP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8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만난 3김. 왼쪽부터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연합뉴스.

고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풍운아로 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쿠데타 창업 공신으로 공화당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그는 줄곧 2인자로 불렸다.

국회의원은 9선 의원을 지냈고 공화당 시절에는 가택연금을 당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무엇보다 김 전 총리는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의 마지막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가 차지하는 정치사의 의미가 깊다.

정치적 라이벌이자 파트너였던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이 대권을 쥐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김 전 총리였다.

1992년 대선에서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해 군부정권 시절을 종식하고 첫 민간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또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이끌던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통해 단일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김 전 대통령의 당선은 첫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가 이처럼 야당 지도자들을 통해 민주화시대의 개막을 도왔지만 명암도 뚜렷했다.

그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도와 5·16 쿠데타를 주도했던 주역이었다. 4.19혁명으로 국민적 기대에 부푼 민주화 시대를 종식시키고 군사독재 정권을 통해 대한민국을 암흑기로 되돌린 장본인 중 하나였다. 또 그가 만든 중앙정보부는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운동 탄압의 선봉에 선 것은 물론 정권 유지를 위해 야당 지도자들을 고문하고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밀실 공작정치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2인자로 불렸지만 정치적 명암은 뚜렷했다.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권력 핵심에서 물러나 63년 2월 첫 외유를 떠났다. 또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이에 반대한 6·3사태가 발발하자 2차 외유의 길을 나섰다.

그의 인생 2막은 민주화 시대 이후에도 크게 빛났다.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집권한 그는 초대 총리에 임명되면서 박정희 시대보다 더 실세 총리로 군림했다.

늘 정권 2인자였던 그도 내리막길이 있었다.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의 앙금은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파기로 결별을 맞이했다.

이후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노렸지만 국회의원 10선 도전 실패은 물론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자민련이 선거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정계은퇴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된다.

cerju@fnnews.com 심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