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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Change] 法도 없는데 ICO 규제… 한국 떠나 싱가포르만 배 불린다

블록체인發 데이터혁명 시작.. (上) 답답한 한국 블록체인 기업들
ICO 메카 된 싱가포르, 명확한 ICO지침이 비결
법인 설립·컨설팅 등 기본비용만 최소 3억.. 암호화폐 현금화 등 사업 구간마다 세금도 내
정책만 잘 만들어놔도 고용창출에 세수까지 확보

[Big Change] 法도 없는데 ICO 규제… 한국 떠나 싱가포르만 배 불린다
지난 5월 싱가포르 현지에서 열린 블록체인 플랫폼 이오스 관련 밋업에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지에서 열린 밋업이지만 한국 기업과 관계자들도 10명 이상 눈에 띄었다.

【 싱가포르=허준 기자】 "지금 우리도 여기서 ICO를 하고 있잖아요. 이미 국경 없이 전 세계에서 ICO로 투자를 받고 있는데, 한국 정부에서만 막는다고 막을 수 있나요? 아직도 옛날 사고방식만 가진 정부 때문에 기업들만 2배, 3배로 고생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투자가 활발한 가운데,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투자금을 모집하는 암호화폐공개(ICO)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어 아쉽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도 이미 다른 나라에서 법인을 세우고 ICO에 나서고 있는데 굳이 ICO를 정부가 나서서 막아설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만난 블록체인 기업들과 법무법인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정부의 애매모호한 정책적 태도를 비판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모든 종류의 ICO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어떤 법으로 어떻게 금지하겠다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성급한 정부 당국자의 발언으로 한국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 ICO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ICO 나선 韓 기업들, 싱가포르에 수억원씩 세금만 더 내

특히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지에서 인터뷰에 응한 한국 기업 대표들은 모두 기업명과 본인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다. 안그래도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정부인데, 굳이 쓴소리를 하면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 보였다.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고 ICO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한 기업 A대표는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고 현지 컨설팅을 받는 비용만 최소 2억~3억원은 필요하다"며 "ICO로 모은 자금(암호화폐)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 현금화할 때도 싱가포르 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A대표는 이 같은 수억원의 비용을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에 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정책만 잘 만들어놔도 고용창출(싱가포르에 법인을 내려면 현지 인력 1명을 반드시 고용해야 한다)과 엄청난 세수확보가 가능할 텐데 그런 노력은 없이 귀찮으니까 일단 ICO 금지라고 한 것은 아닐까"라며 "정말 ICO가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규제할 근거를 만들었을 텐데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지 밋업 행사에서 만난 B대표는 ICO를 위해 싱가포르에서 여러 법무법인과 컨설팅 업체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외국 기업들과 얘기해 보면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ICO를 하지 않고 외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외국 기업들은 한국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데, 한국 기업들은 반대로 한국을 나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지에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의 C임원 역시 한국 정부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해외 기업들이 저녁마다 연일 밋업 행사를 열며 한국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ICO를 금지한다는 정부는 이런 행사를 다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C임원은 "싱가포르에 와서 ICO를 하겠다는 기업들이 너무 많은데, 사실 제대로 싱가포르의 ICO 규제도 모르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중에 세금 등의 문제가 발생할까 우려된다"며 "한국에서 명확한 기준을 줬다면 이들이 싱가포르에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싱가포르를 ICO 메카로 만든 것은 '명확한 규제'

이 같은 여러 기업들의 말처럼 지금 싱가포르는 'ICO 특수'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싱가포르만큼 ICO를 하기 좋은 국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싱가포르의 명확한 ICO 지침이 싱가포르를 'ICO 메카'로 만들어준 것이다.

현지에서 기업들의 ICO를 돕고 있는 법무법인 테일러빈터스의 왕잉유 이사는 "싱가포르에서 ICO를 진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싱가포르의 규제가 가장 명확하기 때문"이라며 "기업을 컨설팅해주는 변호사 입장에서 모호함이 없다는 점이 싱가포르가 ICO 장소로 선택받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이미 수많은 투자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정부도 이 같은 현상을 보고 블록체인 기술을 가진 기업들의 유입을 환영했을 것"이라며 "실제로 몇 달 전만 해도 허술한 프로젝트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명확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ICO를 막을 명분이 명확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이 막으면 싱가포르에 와서 기업들이 ICO를 하는 것과 같은 사태만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ICO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 싱가포르도 개인보다는 기관투자자들이 더 많이 ICO에 투자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이 같은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기관투자자들과 같은 투자여력이 높은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ICO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면 일반투자자들도 참고해서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jjoony@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