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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굼뜬 규제완화, 립서비스는 이제 그만

이번만은 공수표 아니길.. 일자리 차원서 접근해야

청와대와 민주당 그리고 정부가 일제히 규제완화를 외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답답하다"며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미뤘다. 연기를 건의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28일 "현장에서는 규제가 혁신되고 있다는 실감이 적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28일 대한상의를 찾았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과감한 규제개혁에 당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반가운 일이다. 약속만 지키면 이제야말로 규제혁신이 이뤄질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미덥진 않다. 그동안 공수표를 너무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답답하다"고 했을까. 문재인정부는 그 나름대로 혁신성장에 공을 들였다. 대통령은 현대차가 만든 수소차 '넥쏘'를 시승하고, 서울 마곡동에 들어선 LG사이언스파크도 찾았다. 작년 11월 열린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선 "혁신성장을 체감할 선도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올 1월엔 1차 규제혁신점검회의를 했다.

하지만 현장은 대통령의 뜻과는 영 딴판으로 굴러가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규제개선을 38차례 건의했지만 현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과제 발굴보다 해결방안에 치중할 때"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입으로 떠들어봤자 기업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면 '꽝'이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부가 재계 건의문을 적극 수용하면 된다. 얼마 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완화, 영리병원 허용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규제개혁 건의문을 정부에 냈다. 은산분리를 풀면 안 된다는 논리,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차고 넘친다. 이 벽을 넘지 못하는 한 규제개혁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규제개혁은 기득권을 깨는 파격이다. 그만큼 청와대와 정치권, 정부의 강철 같은 의지가 중요하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정부를 자처한다. 그렇다면 규제를 푸는 게 마땅하다. 규제를 풀면 투자가 몰리고, 투자가 몰리면 일자리가 생긴다. 규제완화를 대기업 특혜로 보는 식의 접근은 고리타분하다. 설사 특혜라 해도 진정한 일자리정부라면 규제를 과감히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재벌이 밉다고 인터넷은행 발목을 잡으면 일자리가 날아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규제혁신에 열의를 보였다. '암덩어리'를 없애자며 7시간 끝장토론도 주재했다. 하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다.
일선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전임자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규제완화는 위보다 아래의 변화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