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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고용의 질 떨어뜨린 '비정규직 제로' 정책

공기업들 인건비 부담 늘자 무기계약 대폭 충원 '편법'

공공부문 신규채용 인력 중 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낮아졌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와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 1·4분기에 공기업·공공기관 136곳에서 신규채용한 7901명 가운데 정규직은 73.1%(5778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6.9%를 무기계약직으로 뽑았다.

정규직 채용 비중은 지난해(93.3%)와 비교하면 무려 20.2%포인트나 낮다. 2016년에도 92.6%였다. 올해 공공기관의 정규직 채용 비중이 대폭 하락한 것은 문재인정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영향이 크다. 해당 공기업 등은 비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무기계약직을 대폭 늘렸다. 예를 들면 한국체육산업개발은 신규채용 인력 849명 전원을 무기계약직으로 채웠다. 신용보증기금,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국인터넷진흥원 등도 마찬가지다.

무기계약직은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계약을 맺은 근로자를 말한다. 고용기간은 정규직과 같지만 임금이나 승급 등 처우 수준은 계약직과 같다. 무기계약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0~60% 선에 불과하다. 공공부문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고용의 질을 후퇴시켰다.

이 같은 결과는 처음부터 예상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면 인건비가 늘어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비정규직 1만명 가운데 3000명만 정규직으로 바꾸고 나머지 7000명은 자회사를 만들어 내보냈다.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여수광양항만공사, 한국조폐공사, 한국공항공사 등도 같은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결국 공기업 본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자회사로 내모는 결과가 됐다.

의욕만 앞세운 지나친 시장 개입은 왜곡을 낳는다. 문재인정부 일자리정책에는 무리한 부분이 많다. 비정규직은 오랜 시간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정부가 당장 없애라고 지시한다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무시한 선심 행정과 무리한 개입은 시장을 더 꼬이게 할 뿐이다. 이제라도 무리한 공약을 현실에 맞게 바로잡는 것이 혼선을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