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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스튜어드십 코드보다 독립성이 먼저다

정치개입 논란 차단하려면 국민연금 지배구조 바꿔야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기 위한 공청회가 17일 열렸다. 초안은 기업의 이사·감사 선임 등에 간여하는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를 일단 보류했다. 경영간섭을 둘러싼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의결권 행사를 위탁 자산운용사에 위임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렇지만 기업들로선 긴장할 대목도 곳곳에 보인다. 먼저 주주대표소송 시행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횡령과 배임, 총수 일가 사익편취 등에 걸린 기업은 국민연금이 중점관리사안으로 따로 관리한다. 비공개 대화로 해결이 안 되면 기업 이름을 공개하고 공개서한도 보내기로 했다. 최종안은 이달 말 확정된다.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세계 3위 연기금으로 꼽힌다. 이 중 135조원이 국내 주식에 투자돼 있다. 전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2017년 기준)에 이른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이다. 지분율이 5%를 초과하는 기업이 276개, 10% 초과 기업이 96개다. 한국에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은 죄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라고 보면 된다. 국민연금을 '연못 속 고래'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러니 정권마다 국민연금을 앞세워 기업을 통제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다 박근혜정부가 호되게 당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은 재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당연히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줄 알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다르다. 얼마 전 새 기금운용본부장을 뽑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자주 언론에 등장했다. 지난달 포스코가 새 회장을 뽑을 땐 정치권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마당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칫 정권의 경영권 간섭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기업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을 더 존중하게 될 것이다. 그 덕에 주주들은 배당을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가 필수 선결과제다. 흔히 캘리포니아주공무원연금(캘퍼스)을 주주행동주의 기관투자가의 모델로 든다. 캘퍼스를 진짜 모델로 삼고 싶다면 독립적 지배구조부터 배워야 한다. 캘퍼스가 정부 또는 정치인에게 휘둘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국 대기업들은 후진적 지배구조가 문제다.
이는 국민연금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오로지 능력만 보고 뽑아야 할 기금운용본부장 선출에 정치가 끼어드는 낡은 지배구조를 고치는 게 먼저다. 그래야 앞으로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고 뭐라 하든, 주총에서 어떻게 의결권을 행사하든 구설에 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