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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서둘 것 없다

기금운용委서 결론 못내.. 독립성 확보가 선결과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26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부터 기업 경영참여를 선언하자는 의견과 일단 경영참여는 보류하자는 의견이 맞섰다. 기금운용위는 오는 30일에 만나서 다시 논의키로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지침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관건이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운영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이다. 사용자 대표, 근로자 대표, 지역가입자 대표, 관계 전문가 등 총 20명으로 구성된다. 여태껏 기금운용위에 오른 안건은 무사통과가 관례다. 이번처럼 제동이 걸린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놓고 아직 사회적 합의가 덜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본란에서 누누이 밝힌 대로 우리는 현 시점에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데 반대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먼저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역량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국내 증시에서 국민연금 지분율이 5%를 넘는 기업이 280곳, 10% 초과 기업이 100곳에 육박한다. 반면 기금운용본부 내 의결권·주주권 행사 전담조직은 1개 팀(책임투자팀) 9명에 불과하다. 과연 이들이 수백개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올바르게 정할 수 있을까.

더 큰 이유는 정치적 간섭이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상장사는 죄다 국민연금이 대주주라고 보면 된다. 이러니 정치인들이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의결권을 앞세워 기업을 쥐락펴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를 바로잡는 게 큰 목적 중 하나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떳떳하려면 먼저 제 거버넌스부터 손질하는 게 순서다.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정권의 집사'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대선 공약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정책에서 보듯 공약 이행이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 전문가인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26일 "기금의 수익성과 투명성 보장이 중요한 문제"라며 "경영참여가 주된 논의로 떠오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감한다. 지금 스튜어드십 코드 논의엔 정치가 너무 진하게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