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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노회찬-내가 본 '진보 스타'

굿바이 노회찬-내가 본 '진보 스타'
한 시민이 노회찬 의원 영정 앞에서 울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8년 7월 23일. '진보 스타' 노회찬이 세상을 떠났다. 출근길 인파가 모두 떠난 오전 9시 38분.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좁은 창문으로 몸을 구겨 넣어 투신했다. 전국 각지에서 3만명의 조문객이 몰렸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뛰어 넘는 추모 물결이 일었다.

■정육점 집 사장님을 '귀빈'으로 모신 '생활 정치인'
노회찬 의원을 딱 한번 직접 만난적 있다. 대학에 다니던 2010년 초가을로 기억한다. 당시 원외인사였던 노회찬 의원이 당고개역 인근에서 '마들경제연구소'를 운영하며 유명 인사들의 강연회를 열던 때였다.

노회찬 의원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정치인이었다. 지하철로 1시간 40분을 달려 당고개역 인근 강연장을 찾았다. 그런데 막상 강연장에 도착하니 건물이 어찌나 어두침침하던지 어린마음에 '아! 역시 진보는 가난한 것인가'라며 한탄했다.

굿바이 노회찬-내가 본 '진보 스타'
2009년 조승수 의원의 당선 축하 뒷풀이 모습. 노회찬 의원이 빗자루로 기타를 치고 있다. 사진=노회찬 의원 SNS
앉을 자리를 찾으려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데 웬 임꺽정 같은 사내가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단숨에 그를 알아봤다. 얼굴이 동그란 것이 만화 캐릭터 호빵맨 같았다.

그에게 다가서자 노회찬 의원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엉겁결에 그의 손을 잡았는데 손이 어찌나 두껍던지 깜짝 놀랐다. 짧은 악수를 마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사실 그날의 강연 내용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일일 강연자였던 배우 김여진씨가 이명박 정부와 마찰을 빚던 때라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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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 두 사람은 평생의 동지였다. 사진=연합뉴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따로 있다. '귀빈 소개' 순서였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노회찬 의원이 마이크를 잡더니 귀빈을 소개한다고 나섰다. 속으로 '자기 친한 정치인 몇명 와서 따분한 소리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가 소개한 귀빈은 강연장 앞에서 장사하던 정육점 가게 아저씨와 그가 저녁을 먹은 순대국 집 아줌마였다. 생각해보니 아까 그와 대화할 때 그의 입안 가득 정구지 냄새가 풍겼었다.

귀빈으로 소개받은 정육점 집 아저씨는 쭈뼛쭈뼛 일어나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는 한 마디 하라는 노회찬 의원의 성화에 짧은 인사말을 했다. 순대국밥 집 아줌마는 한사코 한 마디를 거절했다. 생활정치인의 면모였다.

■정의·인권·노동·평등..남겨진 가치, 아득한 꿈
그날 이후 한 번도 그를 직접 본 일은 없다. 수습기자 시절 대선 팀에서 일하며 때때로 정의당 출입도 했기 때문에 몇 번 스쳤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그를 지켜봤다.

어느날인가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 앵커가 노회찬 의원과 자신이 동갑이라며 놀리자 그 큰 얼굴 옆에 브이(V)자를 그려보이며 해맑게 웃던 모습을 봤다. 노회찬 다웠다.

그가 선거에 나왔을 때 한번도 그를 뽑아준 적은 없다. 다만 응원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회적 이슈가 터졌을 때, 그가 내세운 논리와 비유를 보며 표현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그는 마치 한국정치가 보유한 마지막 유머와 해학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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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은 매년 여성의 날마다 국회 청소 근로자와 여성 당직자, 여성 의원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 사진=노회찬 의원 SNS
나는 그가 살아온 민주화의 시간과 노동운동의 시간을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정치인 노회찬을 기억할 뿐이다.

기자 생활을 하며 언젠가 한 번쯤 소주 한 잔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결국 기회는 오지 않았다.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는 지금 세상에 없다.

그가 꿈꾼 세상의 한계와 부작용에 대해서도 토론해보고 싶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노회찬 같은 걸출한 진보 스타를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와 다른 생각을 그렇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 같다.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이 남긴 진보와 인권, 평등과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면 까마득할 뿐이다. 그가 평생을 부르짖었던 차별 없는 세상의 꿈은 여전히 아득하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추모 물결은 그가 한국 정치에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 알게 해준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남긴 삶의 오점보다 그가 삶아온 삶의 가치를 높게 두는 것 같다.

그의 굴곡지고 거칠었던 삶은 이렇게 멈춰섰다. 그가 평안하길 바란다.

굿바이 노회찬.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