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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英 원전 수주, 아직 포기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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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한전이 유력후보..탈원전 탓 비판은 성급해

한국전력이 영국에 지으려던 150억파운드(약 22조원) 규모의 무어사이드 원전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겼다. 사업권자인 일본 도시바가 한전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한다고 지난달 25일 통보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도시바 자회사인 뉴젠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뉴젠은 무어사이드 프로젝트 추진업체다. 자유한국당은 1일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이 22조원 원전 수주를 어렵게 했다"며 "탈원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논평은 성급했다. 한전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잃은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한전이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전에서 아주 밀려난 것은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원인이 됐는지도 불투명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한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는 소멸했으나 도시바, 영국 정부와 협상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 더 아쉬운 쪽은 한전이 아니라 도시바와 뉴젠이기 때문이다. 뉴젠은 지난 2009년 프랑스·스페인·스코틀랜드 3국 합작 컨소시엄으로 출범했다. 2년 뒤 스코티시 앤 서던 에너지(SSE)가 컨소시엄에서 탈퇴했다. 2013년엔 도시바가 스페인 회사(이베르드롤라) 지분을 인수하면서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그런데 지난해 도시바의 미국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경영난 끝에 파산을 신청했다. 그 통에 모회사인 도시바도 어려움에 빠졌다. 그 뒤 프랑스 전력사 엔지마저 지분을 도시바에 넘기고 컨소시엄에서 발을 뺐다. 결국 뉴젠은 도시바의 100% 자회사가 됐다. 하지만 제 코가 석자인 도시바로선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를 추진할 힘이 모자랐다. 바로 이때 한전이 백기사처럼 등장했고, 지난해 12월 뉴젠 지분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돌발 변수가 나오지 않는 한 도시바로선 한전 외에 딱히 대안이 없어 보인다. 뉴젠 지분 인수를 놓고 경쟁한 중국 원전업체 광허그룹이 있지만, 영국 내 정서를 고려할 때 원전 건설을 중국에 맡기기는 쉽지 않다. 지금 도시바는 한 푼이라도 더 지분값을 받는 게 목표다. 영국 정부는 뒤늦게 사업모델을 바꾸면서까지 한전에 더 큰 짐을 지우려 한다. 이럴 땐 산업부나 한전을 탓하기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본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여론이 뒷받침하는 게 맞다. 탈원전 정책이 발목을 잡았다고 비판하는 것도 시기상조다. 그래봤자 우리쪽 협상력만 갉아먹는다.

아직 기회는 남았다.
산업부와 한전은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에 요령껏 대응하기 바란다. 국내 원자력 산업계는 잇단 원전 건설 취소로 풀이 죽었다. 해외 원전 수주는 그 돌파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