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보험 즉시연금, 사법부 판단에 맡겨보자

즉시연금의 미지급금 지급 여부를 놓고 또 금융감독당국과 생명보험업계 간 갈등이 불거졌다. 금융당국은 소비자보호를 내세우고, 생보사는 초법적이라며 반발한다. 한화생명은 9일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지난 6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수용을 거부한 삼성생명에 이어 두번째다.

한화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금액은 삼성생명의 4300억원(5만5000건)에 이어 두번째로 큰 850억원(2만5000건)에 달한다. 즉시연금 보험상품은 가입자가 한번에 목돈으로 낸 보험료를 보험사가 운용해 매달 연금을 지급하고 만기가 되면 원금을 돌려주는 구조다.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란은 지난달 한 가입자가 삼성생명이 보험료를 먼저 떼고 운용해 연금액이 줄었다며 금감원에 분쟁조정신청을 내면서 불거졌다.

금감원은 삼성생명 등 모든 생보사들에 해당 상품 가입자 모두에게 미지급금을 일괄지급하라는 분쟁조정결과를 냈다. 그러자 삼성생명은 일괄지급은 약관에 없는 내용이라면서 법원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한화생명도 "사업비 등을 먼제 공제하고 남은 금액으로 보험금을 운용하는 것은 보험상품의 기본원리"라며 삼성생명처럼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약관을 갖고 있는 다른 생보사들도 금감원의 지급 권고를 거부하고 소송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발생한 자살보험금 사태와 유사하다. 당시에도 금감원은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보험사들에 자살보험금 지급을 권고했고, 생보사들이 이에 불복하면서 결국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원은 '자살해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이 있던 2000년대 초반에 판매한 상품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고, 청구권시효가 소멸된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근거로 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청구권 소멸 보험금도 지급을 압박했고, 거부했던 일부 생보사들은 징계를 받았다. 당시 생보사들은 "소비자보호도 좋지만 법원의 결정을 무시한 초법적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금융당국의 소비자보호는 당연하다.
하지만 법 테두리를 벗어나선 곤란하다. 이번 즉시연금 미지급금 사태도 자살보험금 경우처럼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봤으면 좋겠다. 생보사들도 사법부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