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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핀테크 사후약방문의 교훈

[이구순의 느린 걸음] 핀테크 사후약방문의 교훈


4년쯤 전이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디어 좀 있다는 사람, 첨단기술 좀 안다는 사람, 창업 한번 해보겠다는 사람이면 하나같이 '핀테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수천억원 자본의 대형 금융기업만 있던 금융시장에 수천만원 자본금으로 스타트업을 창업해 뛰어들고, 어깨 나란히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이었다. 핀테크 기술과 참신한 아이디어는 희망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었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수천억원 투자를 받고 대형은행과 경쟁해서 앞섰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렸다. 한국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꿈에 핀테크는 대한민국 스타트업 창업의 희망이었다.

2018년 대한민국의 핀테크는 기라성 같은 은행과 보험회사, 증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웬만한 금융회사들은 모두 간편송금, ○○페이 같은 서비스를 내놨다.

그런데…. 4년 전에 차고 넘쳤던 스타트업은 이제 없다. 스타트업 없는 핀테크는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고 희망도 아니다. 그저 대형 금융기업의 시장 지키기 수단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테디스타는 2014년 1조6000억달러였던 글로벌 핀테크 시장이 2017년 2조9000억달러(약 2100조원)로 성장했다고 집계했다. 다른 시장조사업체는 2100조원 시장을 이끄는 100대 핀테크 기업을 꼽으면서 한국 기업은 비바리퍼블리카 하나 끼워줬다.

4년간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핀테크 스타트업의 안착을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눈길도 주지않던 정부가 남긴 것은 결국 핀테크 산업에서 스타트업을 몰아내고 대기업들의 자리만 넓혀준 것이다. 3년 새 어림잡아 1000조원쯤 성장한 시장에 우리 스타트업이 끼어들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최근 한달 새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짠 것처럼 한목소리로 핀테크 육성을 외치고 있다. 정부 예산도 수천억원 지원한다고 하고, 절대 예외가 없을 것 같던 은산분리 제도도 완화하겠다고 여당이 먼저 나섰다.

그런데… 이미 대형 금융기업들과 글로벌 기업들이 자리를 잡아버린 핀테크 시장에 창업하겠다고 나서는 스타트업이 있겠는지 따져는 보고 정책을 내는지 묻고 싶다. 그야말로 핀테크 사후약방문 아닌가 말이다. 혁신의 핵심요소인 스타트업 창업과 성공의 희망이 없는 핀테크 산업에 누구를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지 묻고 싶다.

지난 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사후약방문 날리면서 한켠에서 제2, 제3의 사후약방문 쓸 일을 여전히 만들고 있는 정부의 현실을 짚어보자는 말이다. 차량공유 스타트업들은 3년 이상 규제와 씨름하다 말라죽어간다. 블록체인도 궁지로 몰려 목소리조차 못 내고 말라간다.


뭐든 새로운 것은 하지 말라고 단속부터 하는 정부가 뭐라도 해보라는 정부로 바뀌지 않으면 사후약방문은 끊이지 않을 듯하다. 예산지원도 정책지원도 필요없다. 그저 명백한 현행법 위반 아니면 뭐든 해볼 수 있는 기회만 주면 된다.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