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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대만 85℃

85℃. 올여름 폭염이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지만, 온도계가 가리키는 눈금이 아니다. 대만계 커피·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이름이다. 대만뿐만 아니라 중국·미국·홍콩·호주 등에 총 1000여개 매장이 있는 세계적 체인이다. 바다소금을 첨가한 85℃ '소금 커피'는 2009년 타임지에 소개될 만큼 유명해졌다.

이 브랜드의 중국 내 매장들이 지난주 뜻밖의 된서리를 맞았다. 방미 길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12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의 85℃ 매장을 찾으면서다. 그는 동행한 의원들과 커피를 사고 매장 직원들과 환담을 나눴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현지의 중국인 네티즌이 "85℃는 타이두(臺獨·대만 독립 지지) 기업"이라며 비난한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불씨가 됐다. 당장 580여개 85℃ 매장이 있는 중국 대륙에서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블룸버그는 16일 이로 인해 85℃ 모기업인 '메이스다런'(美食達人)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1억2200만달러(약 1379억원)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급기야 85℃ 측은 웨이보를 통해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며 사과했다. 국제적 관심사는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의 간여 정도다. 어찌 보면 사태 전개 과정은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과 비슷한 양상이다. 소방법 등을 빌미로 중국 내 롯데쇼핑의 영업을 방해한 것처럼 85℃ 매장에 단속반이 들이닥쳤다니 말이다.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도 "대부분의 돈을 대륙에서 벌면서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며 은근히 '중화 국수주의'를 부추겼다.

용렬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소동을 보면서 작고한 대만 출신 여가수 덩뤼진이 생각난다. '첨밀밀' 등 주옥 같은 곡들은 지금은 중화권의 전설이지만, 양안 관계가 풀리기 전엔 중국에선 그의 노래는 금지곡이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하기 전에도 "낮엔 덩샤오핑, 밤엔 덩뤼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륙의 민초들도 그의 노래를 좋아했단다. 그렇다면 85℃의 운명도 장기적으로는 이 브랜드 커피에 익숙해진 중국인들의 입맛이 좌우할 듯싶다. 문득 "한 잔만 마시려고 했는데 옛 추억에 두 번째 잔을 또 비웠네요"라는, 덩뤼쥔의 '좋은 술에 탄 커피' 속 가사가 떠오른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