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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거꾸로 가는 소득분배…진보정권의 역설

서민 지갑 갈수록 얇아져 소득주도 궤도 수정해야

문재인정부 들어 소득분배가 악화일로다. 23일 통계청은 2·4분기 가계소득 조사를 발표했다. 1분위(하위 20%) 소득은 한 해 전 같은 기간에 비해 7.6% 줄었다. 반면 5분위(상위 20%) 소득은 10.3% 늘었다. 잘사는 계층은 더 벌고, 못사는 계층은 덜 벌었다. 당연히 격차가 더 벌어졌다. 5분위 배율, 곧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5분위가 1분위보다 얼마나 덜 벌었나 봤더니 5.23배에 이른다. 이는 2008년 이래 가장 높은 숫자다. 소득분배 구조가 10년 전 금융위기 당시로 돌아간 셈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는 문재인정부로선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 1·4분기에도 분배 악화가 역대급이더니 이번에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원인은 여럿이다. 고령화로 일흔살 넘은 저소득층 가구주가 대거 1분위로 편입된 것도 분명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가계소득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근로소득을 보자. 지난 4~6월 1분위 근로소득은 16% 가까이 줄었다. 사상 최대폭 감소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합리적 추론이다. 요컨대 소득분배는 가만둬도 고령화 때문에 나빠질 판이었다. 정부는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통계청 조사에서 주목할 게 하나 더 있다.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한 5분위 배율 통계(분기별)는 지난 2003년부터 15년치가 쌓였다. 잘 보면 노무현정부 시절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다. 대부분 5배를 웃돈다. 그만큼 소득 양극화가 컸다는 뜻이다. 물론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금융위기 직후엔 배율이 꽤 높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박근혜정부 때 수치가 가장 낮은 편이다. 이는 보수정부 시절에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통념과 다르다.

소득주도성장은 갈림길에 섰다. 일자리 통계는 '쇼크' 수준이다. 거기에 소득분배까지 더 나빠졌다. 분배를 통해 성장을 이룬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은 허구로 드러났다. 누구 말처럼 더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런데도 서민을 위한다는 문재인정부는 정책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당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지난 5월 1·4분기 소득분배 통계가 나오자 문 대통령은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위원회는 7월에 내년 시급 10.9% 인상안을 밀어붙였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해외로 나가라고 우리 등을 떠민다"고 불평한다. 정부 정책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저소득층은 가뜩이나 얇은 지갑이 더 얇아졌다. 소득주도성장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이 무모한 실험을 지켜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