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순의 함께 살기]

통계가 무슨 죄가 있다고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과 소득분배가 나빠지자 불똥이 통계청으로 튀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갑자기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통상 재임기간이 2년 안팎인 자리였는데 13개월 만에 바꿨다. 교체 이유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짚이는 대목이 있다. 지난 23일 통계청은 재난에 가까운 고용둔화와 소득분배 악화를 보여주는 가계동향조사 통계를 내놨다. 이튿날 문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 축사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올바른 방향이다. 소득양극화 해소에도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틀 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는데 통계청이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황수경 전 청장의 이임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것이 국민 신뢰를 얻는 올바른 길이다"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 통계는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1년 전보다 각각 8%, 7.6% 급감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발표가 나온 뒤 황 전 청장은 조사대상 표본 수가 늘어난 점을 적극 홍보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들었다고 한다. 조사를 잘못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인구 상황에 맞는 데이터를 뽑으려 표본 수를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40% 이상 대폭 늘린 것은 누가 봐도 잘한 일이다. 표본 수를 늘리면 통계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가뜩이나 이 통계는 올해 없애려다 여당이 소득주도성장 홍보용으로 존속시켰다. 제 발목을 잡은 여당이 애꿎은 통계청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통계청장은 한술 더 떴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 "장관님들의 정책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강 청장은 청와대가 지난 5월 1·4분기 소득분배 지표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밝혀 문제가 됐을 당시 해당 자료를 제출한 인물이다. 정권 맞춤형 통계가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결국 이번 통계청장의 급작스러운 경질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잘못 끼운 첫 단추에서 시작한다. 주52시간 근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단축 등 제도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문제는 속도다. 업종과 지역을 막론하고 2년 새 29% 인상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지난봄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다.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잘못 끼운 첫 단추의 후폭풍은 거세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대부분의 경제지표는 10년 만에 최악이다. 미국 증시는 9년 넘게 고공비행 중인데 한국 증시는 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푸대접을 받는다. 80%를 웃돌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곤두박질친 이유다.

통계는 모든 정부 정책의 기초가 된다. 통계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통계청장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책을 폐기할 수 없다면 속도조절이라도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4분의 1이 지났다. 시간이 많지 않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자본시장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