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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수출 경합도 지수

10여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후배가 있다. 그가 기분 좋은 말을 들려줬다. 한국 가전제품이 미국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단다. 삼성전자, LG전자 제품이 어느 가전매장을 가도 진열대의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생인 후배의 막내아들이 언젠가는 미국 친구가 삼성전자 TV와 냉장고를 샀다고 자랑하더란다.

문득 30여년 전 일제 소니 컬러TV가 있던 친구 집에 틈만 나면 우르르 몰려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격세지감이다. 한편으로는 우리 기업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소니, 제너럴일렉트릭(GE) 등 경쟁사들과 얼마나 치열한 경합을 벌였을지를 생각하면 뭉클하다. 끊임없는 기술개발 덕이다.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가 아마존, 애플, 구글에 이어 4위란다. 자랑스럽다.

최근 샤오미, 하이얼 등 중국 기업들이 치고 올라온다. 가격이 싼 데다 품질도 개선돼 수출시장에서 우리 기업들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중국과 우리의 해외수출 경합도지수(ESI)가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 지수는 수출시장에서 경쟁품목이 얼마나 겹치는지를 나타낸다. 수치가 높을수록 수출경쟁이 심하다는 뜻이다. 한·중 간 ESI는 2000년 0.331에서 2016년 0.390으로 상승세다. 특히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 8대 주력품목은 0.470이다. 중국의 산업기술 경쟁력이 강화되고, 한국과의 기술격차가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한·중 기술격차는 1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쫓기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우리에게 피해만 주는것은 아닌 듯하다. 10일 미국 시장에서 중국과 경합 중인 업종에서 우리 기업의 반사이익을 점치는 분석이 나왔다. 디스플레이, 휴대폰, 조선, 기계, 섬유 등이다. 미국은 중국이 미래동력으로 집중투자에 나선 첨단기술분야, 즉 '중국 제조 2025'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세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정보기술(IT), 항공우주, 신소재, 바이오 등 10대 핵심사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계획에 발끈해 싹을 자르려고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정부가 홍콩과 마카오, 광둥성 도시들을 묶어 최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개발하려는 '중국판 실리콘밸리' 조성계획을 미루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미국 눈치보기다. 우리에게 유불리를 판단하긴 아직 섣부르다. 그런데 트럼프가 중국을 계속 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cha1046@fnnews.com 차석록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