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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평양 가는 기업인들, 언행에 신중하길

美·유엔제재 아직 안풀려..정부는 기업 보호 나서야

대기업 총수들이 18~20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한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식 수행한다"고 발표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재계 총수들의 평양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사상 첫 평양 정상회담 때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 회장, 손길승 SK 회장 등이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했다. 2007년 정상회담 때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갔다. 2018년 명단에선 이재용 부회장의 이름이 단연 돋보인다. 올여름 LG그룹 4세로 경영권을 이어받은 구광모 회장이 이름을 올린 것도 눈에 띈다.

지난 4월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판문점선언에 합의했다. 선언은 지난 2007년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1차적으로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에 청와대가 코레일과 한국관광공사 대표를 수행원 명단에 넣은 것은 판문점선언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또한 비교적 젊은 재계 총수들에겐 이번 방북이 장차 대북사업을 모색할 때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올해 기업인들의 방북이 2000·2007년과 환경이 같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회담을 앞두고 남북은 금강산 관광에 합의하는 등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6·15선언은 개성공단 사업의 토대가 됐다. 2007년 가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갈 때도 분위기가 좋았다. 금강산 관광객은 2005년에 100만명을 넘어섰고, 2007년엔 개성공단이 1단계 기반공사를 마쳤다.

그에 비하면 2018년은 아직 남북 간 긴장을 풀 때가 아니다. 금강산 관광은 오래전 중단됐고, 개성공단도 가동을 멈췄다. 북한이 핵을 터뜨리고 장거리 미사일을 쏠 때마다 유엔과 미국은 제재 강도를 높였다. 물론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새롭게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사실이다. 지난 6월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북한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목표까진 갈 길이 멀다. 유엔 제재, 미국의 단독제재도 풀릴 기미가 없다.
특히 제3국을 겨냥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은 대기업들엔 공포의 대상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 기업인들은 평양에 가더라도 언행을 신중히 하기 바란다. 정부는 자칫 우리 기업이 국제외교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