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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감에 기업인 불러 세우는 구태 끊어야

정부 감시·견제 취지 벗어난 무더기 기업인 호출 삼가길

국회는 10일부터 20일간 총 753개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국정감사를 실시한다. 지난해 국감이 직전 박근혜정부의 난맥상을 파헤치는 장이었지만, 이번 국감은 문재인정부의 국정 좌표를 바로잡을 소중한 기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감이 막을 올리기도 전에 본궤도에서 벗어날 조짐이 감지돼 걱정스럽다.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세우는 구태가 재연될 기미를 보이면서다.

주요 상임위에서 대기업 총수 등의 증인채택 여부를 놓고 여야가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에서 자유한국당 측이 평양정상회담 때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하고 있다. 불발로 그치긴 했지만 환경노동위에선 정의당이 대기업 총수들을 무더기 호출하려 했다. '증인신청 실명제'가 유명무실해진 꼴이다. 가급적 민간기업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면서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국감 증인.참고인 채택과 관련, "오직 정치공세를 위해서 정략적 판단으로 하는 신청은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과 함께 북한산 석탄반입 사건 관련 인사 등을 증인채택 불수용 대상으로 적시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원칙이다. 헌법과 '국감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정책과 부조리를 감시.견제하는 게 국감의 근본 취지다. 북한산 석탄반입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 의혹을 산 한전 산하 공기업들이 국감대상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평양정상회담에 동행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 총수를 증인채택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는 홍 원내대표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 조치 없는 과속 남북경협은 문제라는 야권의 지적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적 문제 제기는 정부를 상대로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 굳이 대기업 총수들을 부르겠다는 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라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대내외적 불확실한 경제상황에 대응하느라 촌각을 다투는 기업인들을 불러 하루 종일 국감장에 벌을 세우다시피 하는 후진적 관행과는 이제 결별할 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