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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회의 질서, 기업에 적용하지 말라

[기자수첩]국회의 질서, 기업에 적용하지 말라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근무 첫날, 어리바리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한 선배 보좌진이 "보좌진은 기다리는 데 도가 터야 한다"고 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적응하라는 뜻에서다. 근데 정말로 도가 틀 정도로 기다릴 일이 많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수행비서는 "국회에서 근무한 시간의 절반 이상은 기다리면서 보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국회는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쓸 때가 많았다. 쓸데없는 의전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가 하면, 업무절차도 길고 비효율적이다. 특히 본회의나 국감 도중 '파행'이라도 일어나면 본격적인 기다림이 시작된다. 문제는 파행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안에 녹아들다보니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법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 틀 아닌가. 업무절차가 답답하더라도 그만큼 촘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치러야 할 값이다. 의전 역시 '국민의 대표'라는 신분을 생각한다면 업무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없게끔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파행은 정당에 협상의 카드로 사용된다. 숫자가 부족한 정당이 거대 정당에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국회 안에서의 질서다. 국회는 일반 사기업에도 국회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질서를 일괄 적용한다. 특히 입법기관의 칼이 유난히 서슬 퍼렇게 빛나는 국정감사 기간에 이런 문제가 자주 지적된다. 국회도 개선하려 노력했다. 기업을 대상으로 질의해야 할 경우 실무진 위주로 소환하고 대기시간도 줄였다. 올해 환경노동위원회는 삼성전자, 옥시레킷벤키저 경영진이 포함된 증인들에게 증인 질의가 본격화되는 오후 1시30분까지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국회의 비효율성을 기업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 옥시레킷벤키저 경영진 등은 올해 환노위 국감에서 발언대에 올랐다 내려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위원들 질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보니 질의가 들어올 때마다 답변대에 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 탓에 비슷한 질의와 답변이 반복됐다. 위원들의 질의 순서와 별개로 한번에 한 명의 증인에게 집중적으로 질의가 이뤄졌다면 이런 비효율은 절감됐을 것이다. 효율성은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비효율성을 줄였을 때 국회와 기업 모두 윈윈할 수 있지 않을까.

ktop@fnnews.com 권승현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