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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빚진 인류 동물의 권리를 묻다]개가 느끼는 고통, 닭은 모를까요? 종차별없이 하나의 생명으로 봐주세요

(5)끝 LA 농장동물보호소 '젠틀반'
동물원서 마주친 염소, 제대로 걷지도 못해 수술·마사지 통해 뒷마당서 뛰어놀게돼
환경 바꾸고 교육 통해함께 어울려살아가길

[동물에게 빚진 인류 동물의 권리를 묻다]개가 느끼는 고통, 닭은 모를까요? 종차별없이 하나의 생명으로 봐주세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동물보호소 '젠틀반'에는 개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외면받은 소, 닭, 돼지, 칠면조, 염소, 라마 등 각종 동물들이 구조돼 보호되고 있다.

[동물에게 빚진 인류 동물의 권리를 묻다]개가 느끼는 고통, 닭은 모를까요? 종차별없이 하나의 생명으로 봐주세요
구조한 농장동물을 보살피는 미국 동물보호농장 '젠틀반'의 엘리 락스 대표


【 로스앤젤레스(미국)=강규민 기자】 미국에선 최근 완전 채식주의를 의미하는 '비건 라이프(Vegan life)' 열풍이 불고 있다. 옥스퍼드사전에 따르면 '비건'은 육류·어류뿐만 아니라 우유, 달걀도 먹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일부 완전 채식주의자들은 실크나 가죽같이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 미국 도심에선 채식주의자를 위한 레스토랑에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웬만한 식당에는 완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준비돼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9월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사막에 위치한 농장동물보호소 '젠틀 반(The Gentle barn)'의 엘리 락스 대표를 만나 '비건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를 통해 한국인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식 동물보호주의 내면을 살펴봤다.

■사막에 세운 농장동물보호소

지난 1999년 젠틀반을 설립한 락스 대표는 완전 채식주의자이면서 농장동물보호소를 운영 중이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소, 닭, 돼지 등 모든 동물은 사람과 같이 다 감정이 있는 생명"이라며 "종 차별 없이 하나의 생명으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던 락스 대표는 괴짜 소리를 듣고 자랐다. 동물도 사람과 같은 생명으로 본다는 이유로 모든 이들의 놀림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물은 항상 나에게 친구 같았다"며 "말이든 소든 새든 개든 나에겐 그냥 다른 모습의 생명으로 보였다. 친구들은 이런 날 이해하지 못했고, 가족들도 날 놀리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했다. 오빠도 일부러 날 울리기 위해 동물을 괴롭혔고, 부모님도 항상 이런 나를 타이르고 나무랐다"고 덧붙였다.

실제 락스 대표는 7세 때부터 꿈이 동물을 구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곱살 때부터 부모님께 '내가 커서 어른이 된다면 큰 집을 사서 그곳에 도움이 필요한 모든 동물들을 구조해 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 보여줄 것'이라고 외치곤 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어린 그는 어떻게 그 꿈을 이룰지 몰라 고민만 하며 자랐다.

■체험동물원서 구조한 염소로 젠틀반 설립

락스 대표가 젠틀반을 설립한 것은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험동물원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곳을 방문한 락스 대표는 충격적 광경을 눈앞에서 보게 됐다.

그는 "동물원에 있던 염소와 양들의 발톱은 너무 길어 구부러져 있었고, 다리가 변형돼 걸을 수도 없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병든 당나귀를 채찍질하며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물도 없고, 죽은 동물들도 보였다. 너무 끔찍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그런 동물들을 보고 웃으며 아이를 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 광경을 본 락스 대표는 그때부터 동물들을 구조해 집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그는 "고통받는 동물들을 보고 속이 뒤집어져 나가려고 하는데 늙은 염소 한 마리가 내 앞을 막아섰다"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아 보이는 염소는 마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원 주인에게 염소를 주거나 팔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허락해줄 때까지 여기 있겠다고 하고 12일 동안 그곳을 떠나지 않자 13일째 되던 날 염소를 데리고 집에 갈 수 있게 됐다"고 회고했다.

락스 대표는 염소에게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후 종양제거 수술, 마사지를 통한 변형된 다리 복원 등을 했다. 그는 "몇 달 후 메리는 내 뒷마당에서 뛰어다니며 행복한 염소가 됐다"며 "그때 어릴 적 나의 꿈이 떠올랐다.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구조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후 체험동물원으로 간 그는 주인에게 메리의 사진을 보여줬다. 주인은 락스 대표의 의지를 본 후 닭, 소, 돼지, 당나귀, 염소 등 뼈가 부러지고 병든 동물들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락스 대표의 동물보호농장인 젠틀반이 시작됐다.

■어린이 교육 통해 동물가치 일깨워

락스 대표는 세상을 바꾸는 데는 교육과 법안 등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을 잘 알지 못하지만, 교육은 내가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며 "지구에는 병든 동물들을 다 수용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린아이가 동물을 보고 혐오스럽다거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자라온 환경이나 교육을 통해 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동물들도 다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세상에는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동물을 구조하는 것도 내 일이지만, 동물을 학대하고 살생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도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젠틀반의 최종 목적은 미국의 각 주에 젠틀반을 만들어 고통받는 동물들을 구조하는 것이다. 락스 대표는 "젠틀반을 널리 퍼뜨려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동물은 생긴 것은 다르지만 다 같은 생명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언급했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