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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태칼럼]케인스도 하이에크도 아닌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든다? 대통령이 지난주 해외에서 “경제성장은 기업의 애국심 덕”이라고 기업예찬론을 편 바로 그 날, 국회 정무위가 대기업 금융계열사 보유주식의 의결권 축소와 출자총액제한제도 유지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는 보도에 이 속담이 떠올랐다.

두달 전 “기업이 나라”라며 기업인들에 보낸 최상의 헌사도 아직 귀에 쟁쟁한 터에… 재계는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보들레르는 웃음은 악마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뜩이나 기업들은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 앞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처지다. 또 출자총액제한 문제만 해도 폐지하기가 정 어렵다면 적용대상을 5대 그룹으로 완화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 직후였다.

재계의 요구를 들어주고 말고는 다음 일이다. 정부·재계간의 견해 차가 왜 그리 심한지, 왜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지 우선 충분히 토론을 했어야 옳았다. 정부와 집권당은 무엇을 위해 재계와 야당이 한사코 반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지 물어보고 싶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영을 하지 않으면 퇴출되는 냉혹한 환경에서 악전고투하는데 정부나 정치권은 아직 규제위주의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는 감마저 든다. 미뇽이 그토록 갈망했던 ‘금빛 오렌지 빛나고 월계수 드높이 서 있는 저 평화로운 레몬 꽃 피는 나라’ 같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정녕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이상 세계인가.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현상을 바라보는데는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광속으로 변하는 만큼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과거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넓은 눈으로 바라보아야 해결책이 나온다.

기업인들은 손발이 묶이어 투자는커녕 현상유지도 어렵다 하고 구멍가게 주인들은 장사가 안된다며 한숨짓는다. 이같은 상황에 몰려 있는데도 경제살리기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견해는 둘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시장개혁을 해야 할 것이냐, 아니면 개별 경제주체와 시장기능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냐에서 파생된 갈등이다. 새삼 시장과 정부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투쟁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갈등은 경제문제를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데서 생긴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당초 ‘물 흐르듯이 개혁하겠다’던 참여정부는 기존의 질서를 전적으로 변혁하려는 현실초월적 방향으로 기울어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보다 많은 경제영역에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주장함으로써 파열음을 빚고 있다. 그 결과 반시장적, 좌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학문적 엄밀성으로 따져 현 정부를 좌파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어느 경제연구원장처럼 성매매단속조차 좌파정책이라고 몰아붙이는 극단적 편견을 가진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들은 국민주택규모 이하 아파트 원가공개정책에 대해서도 좌파적이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15년 전 극단의 토지공개념을 도입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법을 만들었다가 위헌판결을 받은 과거 정부에 대해서는 좌파라고 하지 않으니 그 좌파의 기준이 무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집권층은 경제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개입할 것을 주장한 케인스의 후예로 자처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인 역사관, 세계관 해석으로부터 탈피해 시대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이 시대와 국민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얼마나 지지하는지, 혹은 거역하는지를 냉철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한국경제통인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교수는 현정부의 경제정책 점수를 IMF 외환위기 직후보다도 훨씬 낮은 30점으로 매겼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한다.

실증경제학과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신봉하는 보수세력도 시장기능이 만능키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변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 ‘케테리스 파리부스(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수요공급원리, 시장논리를 사회 경제문제의 유일한 잣대로 삼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도 공평성과 경우에 따라서는 효율성을 충족시키고 혁신을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강자와 약자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시장은 점점 독과점화되어가는 추세여서 경쟁의 효율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자신도 ‘철학의 빈곤’이라는 비판을 받는 처지에서 상대방의 세계관을 문제삼는 일을 없어야 될 것이다. 더구나 시장과 정부의 역할, 좌우의 이념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브람스의 계절인 가을의 끝자락에서 파격의 낭만주의자이면서도 형식을 존중하는 고전주의의 향기를 지닌 그가 스스로 우리사회의 갈 길을 가리키는 것만 같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자기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헤세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