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 동안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딸 앞에서 얼굴을 제대로 못들 것 같습니다. 남들처럼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어찌보면 애비가 애비노릇을 제대로 못해서 딸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유용환씨(70·동작구 상도동)는 지난 79년 잃어버린 딸 명숙씨를 가슴 한쪽에 담은 채 20여년의 세월을 버텨왔다. 당시 16세였던 명숙씨는 그해 2월 공장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간 뒤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명숙이는 가난한 집의 2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해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웃을 때 아랫볼이 쏙 들어가는 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살아있다면 지금쯤 중년이 되었겠지요.” 유씨는 요즘도 잃어버린 딸 생각이 날 때면 괴로워 술잔을 기울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씨는 당시 2개월동안 생업을 접은 채 딸을 찾아 다녔다. 없는 살림에 빚을 얻어가면서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안가본 곳이 없었다. 이때문에 당시에 20만원의 큰 빚을 지기도 했다.
“정말 안 가본 곳이 없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이는 아가씨는 전부 내딸같았죠.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자식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면 제 심정을 이해 못하실 거에요.”
그렇지만 당장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딸을 찾아나서지 못했다는 유씨. 그래서 그는 맏딸 명숙씨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크다.
“명절 때 큰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모이면 허전한 느낌이 더욱 커집니다. 딸 시집 보내고, 며느리 볼 때마다 명숙이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만약에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면 고맙다는 말밖에 할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씨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딸이 죽지 않았으면 기사를 보고 꼭 찾아올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명숙씨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 올해 설에는 모든 가족이 모여 즐거운 명절을 보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만약에 명숙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손을 붙잡고 놓지 않을 겁니다. 만약 딸을 만날 수 없더라도 어디 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면 더 좋겠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70세 노신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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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7024@fnnews.com 홍창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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