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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김수근展’…빛과 벽돌로 詩를 짓던 건축장이,그가 돌아오다



“집이 뭐죠?”라는 모건설 회사 CF가 있다. 질문을 받은 화면속 주인공이나 시청자도 갑자기 멍해 진다.

‘집=돈’이라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집은 무엇일까. 집을 이야기하자면 건축이라는 뿌리를 찾아야 한다. 국내 현대건축을 거론할때 빼놓고 지나칠 수 없는 한 인물이 있다. 공간사옥,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체조경기장, 국립 진주박물관, 경동교회, 불광동 성당, 벽제 화장장, 아르코 미술관, 샘터사옥을 만든 건축가 고 김수근(1931∼1986)이 그 주인공이다.

미국의 타임지에서 ‘한국의 가장 경탄할 만한 훌륭한 건축가’라고 평하기도 했던 건축가 김수근은 ‘건축은 예술’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연 대가이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집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김수근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의 집은 자궁(子宮)입니다. 내 집은 자궁이고 자궁의 집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집은 가옥이며 집의 집은 환경입니다. 집을 주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환경입니다. 환경이 철학적으로는 공간이 되겠는데, 공간은 집의 집의 집입니다.”

■김수근, 그는 누구인가

‘모태 공간’을 주장하는 고 김수근은 60년대 남산 국회의사당 설계공모에 1등으로 당선하며 건축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건축은 언어가 아니라 시멘트 목재 돌 철재 강철 알루미늄 유리를 사용해서 짓는 시(詩)이며 건축가 중에서 시 소설 모르는 놈은 별볼일 없다”고 단언한 그는 한국건축이 가지는 공간과 조형의 본질적인 멋인 인본주의와 자연주의적 건축언어를 만들어냈다.

50∼60대가 넘은 건축가들치고 김수근의 이름 석자가 지닌 카리스마에 안 눌려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국립국악학교를 지은 민현식,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집 수졸당을 지은 승효상, 환기미술관 우규승, 바른손센터 이종호, 경기도립박물관 장세양, 일산 허유재 병원을 지은 김영준 등 국내의 내로라 하는 유명 건축물과 건축가들이 대부분 김수근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공간사랑 기획자인 강준혁씨는 “김수근선생은 항상 새로운 정보와 신선함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을 던졌다”며 “건축가의 사회문화적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실천했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요즘 젊은 건축학과 학생들이 김수근 선생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는 승효상씨는 “어떤 스페인 건축가가 김수근 선생이 지은 자유센터를 보고 스페인에 이런 건축이 있었으면 책이 스무권은 더 나왔겠다고 할정도로 탄복을 하는데 우리는 김수근 건축은 그냥 파괴시켜야 할 구시대의 부동산으로, 또 김수근이라는 사람이 어떤사람인지도 모르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수근을 말할 때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지하1층, 지상 4층의 검은 2층 건물 ‘공간 사옥’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건물은 국내현대건축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사랑방이었다. 77년엔 소극장을 개관 전위극 무용이나 전통 연희등 각종 공연을 군사정권시절에도 연간 500여회씩 벌였다. 사물놀이패 김덕수, 춤꾼 공옥진 등은 ‘공간사랑’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인물들이다.

■김수근 다시 부활하다

빨간벽돌과 담쟁이 덩굴. 김수근 건축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전통과 현대의 만남,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산증인이다. 그러나 건축사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그가 설계한 건축물과 건축사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이해도는 그와 화가 박수근을 혼동할 정도다.

지난 86년 55세에 간암으로 타계한지 20년. 그가 손수 지은 동숭동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되는 특별전시 ‘지금 여기(Here and Now):김수근전’을 통해 그는 다시 한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부활한다.

오는 7일부터 7월28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행사는 김수근의 대표 건축물이자 서울 대학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는 아르코 미술관(1977년 설계)과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개최된다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아르코 예술극장과 미술관을 지으면서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표현했던 김수근의 작품속에서 건축가들과 일반인들이 모두 참여할수 있는 축제의 한마당이 열리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초점은 건축가 김수근의 다큐멘터리조명이 아닌 뛰어난 문화예술인이자 자연인으로서의 김수근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함으로써 ‘인간 김수근’을 느끼게 한다.
그의 건축 키워드를 통해 실제 건축물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다.

한편, 고인의 기일인 14일 오후 제1전시실 소극장에서는 ‘건축가 김수근과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리고, 7월1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동시대 시각예술, 그리고 환경으로서의 건축’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린다. (02)760-4892

/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사진설명=71년부터 김수근 장세양 오섬훈씨등 3세대가 걸쳐 설계를 마무리한 공간사옥은 '한국 모더니즘의 완결판'으로 평가받고 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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