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프랑스)=박하나기자】지난 18일 새벽 0시 30분. 제61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상영된 영화 ‘추격자’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관객들은 10여분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배우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영화제 기간 발행되는 일간지 ‘버라이어티’ 역시 배우들의 호연과 흥미진진한 연출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추격자’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과 배우 하정우, 김윤석은 얼떨떨한 기색이다. 이들은 지난 19일 밤 9시(현지시간) 프랑스 칸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대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는데 무척 기쁘다”고 흥분을 에둘러 표현했다.
―‘추격자’가 상영되던 그 날 밤의 객석 반응은 어땠나.
▲나홍진(이하 나) : 생각해보라. 비가 억수같이 오는 새벽에 3000명의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면 기분이 어떨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뛴다.
▲하정우(이하 하) : 2006년 ‘용서받지 못한 자’, 2007년 ‘숨’으로 3년 연속 칸영화제에 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다. 기존에는 예술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이젠 다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로 진출한거다.
▲김윤석(이하 김) : 실망하게 될까봐 기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쉽게 들뜨거나 흥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그 날만큼은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정도로 벅찼다.
―‘추격자’ 상영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
▲나 : 관계자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정중해졌다. 처음엔 이런 건줄 몰랐다. 단순히 우리 영화가 상영이 되고 그 자리에 참석하는 자리인 줄로만 알았다. 첫날에만 7개의 인터뷰를 했다. 턱시도를 입고 세계 유명 감독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게 아직은 얼떨떨하지만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하 : 나흘동안 20개의 인터뷰를 했다. 그 중 한 명은 ‘한국 영화에는 항상 당신이 나오느냐’고 까지 물었다. 그가 이제껏 본 한국영화에 모두 내가 나와서 건넨 말이다.
▲김 : 아침에 거리를 걷다보면 백인 여성들이 ‘Chaser!(추격자)’라고 아는 체를 한다. 외신 기자들은 나에게 ‘굉장히 이상한 영웅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망나니로밖에 보이지 않는 전직 형사가 결국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를 쥔다는 점에서 그들은 아이러니를 느끼는 것 같다.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차지하는 위상에 차이가 있나.
▲하 : 빈말이 아니라 이제는 한국영화가 정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많은 이들이 ‘살인의 추억’ ‘괴물’ 등을 거론하며 ‘한국영화는 이러이러하지 않느냐’고 물어온다. 한국영화라는 게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이상은 변방의 예술영화가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 것 같다.
―‘추격자’의 어떤 부분을 특히 높게 평가한다고 생각하나.
▲나 : ‘추격자’는 장르영화다. 하지만 액션이나 스릴러 한 군데 머물지 않고 코미디와 멜로, 드라마, 호러까지 버무려진 혼합 장르의 색을 띠고 있다. 관객들은 바로 이런 변화에 주목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깔깔 대고 웃다가 순식간에 소름끼치는 살인 장면으로 전환되는게 무척 신기한 모양이다. 웃을 때는 충분히 풀어줬다 무서운 장면에선 숨도 못쉴 정도로 죄어드는 긴장감을 만끽한거다. 또 극중 주인공이 망치를 들고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망치를 보며 다들 웃더라. 우리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들이 보기엔 망치라는 도구가 굉장히 코믹한 요소였던 것이다.
/wild@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