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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의 코믹 버전?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을 뒤쫓던 김윤석이 또 달린다. 이번에는 충청도 사투리를 징하게 쓰는 시골 형사다.

‘황진이’의 씨네2000이 제작하고 ‘2424’의 이연우 감독이 연출한 ‘거북이 달린다’는 김윤석이 전작에서 구축해 놓은 이미지를 재활용한 영화로 보인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거북이 달린다’를 ‘추격자’의 ‘코믹 버전’으로 규정해도 크게 틀릴 것 같지는 않다.

‘거북이 달린다’의 시골 형사 조필성이 ‘추격자’의 전직 형사 엄중호에 비해 다소 허술한 인물이라는 점, 그래서 시도때도 없이 웃음이 터져나오고 때론 따뜻한 인간미마저 풍긴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지만 끈질기게 용의자를 추격하고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져 기어코 수갑을 채운다는 점에선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거북이 달린다’를 ‘추격자’의 속편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목숨 걸고 범인을 뒤쫓는 형사 이야기가 엇비슷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영화가 그려내는 풍경과 무늬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추격자’의 흥건한 피와 살육은 시골 형사의 엉뚱한 오기로 바뀌었고 심장을 조여오는 긴장과 스릴은 허튼 웃음으로 대체됐다.

거북이(시골형사)와 토끼(탈주범)의 대결을 코믹하게 그린 ‘거북이 달린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솝 우화에서 제목을 빌어왔다. 만날 마누라에게 핀잔이나 듣는 무능한 형사 조필성이 느려 터진 거북이라면 그의 맞상대인 희대의 탈주범 송기태가 약삭빠르고 신출귀몰한 토끼다. 문제는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의 결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거북이의 승리가 예정돼 있는 이 영화의 흥행은 결국 거북이가 토끼를 얼마나 그럴 듯하게, 그리고 얼마나 흥미롭게 이기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거북이 달린다’는 전적으로 김윤석의 ‘원맨쇼’에 기댄 영화다. 지난해 ‘추격자’로 각종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쓴 김윤석은 제작진의 기대에 적절하게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윤석의 고군분투에 비하면 그의 상대역인 탈주범 송기태(정경호 분)의 캐릭터는 다소 밋밋해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맡았던 연쇄살인범 지영민의 캐릭터를 떠올려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이번 영화를 제작한 씨네2000 이춘연 대표는 ‘거북이 달린다’를 “햄버거나 피자 같은 영화가 아니라 우리 정서가 듬뿍 담긴 무공해 유기농 영화”라고 했다. 시장바닥에서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인물이 희대의 탈주범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처럼 마음 졸이며 봐야 하는 스릴러가 아니라 허리띠 풀어놓은 채 허허실실 웃을 수 있는 그런 영화다. 우연히 만난 탈주범에게 돈 뺏기고 흠씬 얻어터져 시쳇말로 스타일 완전히 구긴 시골 형사의 오기와 고군분투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15세 이상 관람가. 11일 개봉.

/jsm64@fnnews.com정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