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12일 11시 18분. 예멘 아덴 항구에서 미해군 구축함 콜호(USS Cole)에 소형 선박이 몰래 접근했다. 테러리스트 단체 알카에다의 ‘자살폭탄’ 테러용 선박이었다. 450kg 이상의 폭발물을 실은 이 선박은 구축함 측면에 부딪히며 폭발했고 그 결과 17명의 선원이 사망하고 39명이 부상했다.
미국 국민은 이에 분노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책임자를 찾아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며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미국 내에서 애꿎은 인명손실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고, 미 정부는 육군과 공군뿐만 아니라 해군의 무인화 시스템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스파르탄 스카우트(Spartan Scout)’와 같은 USV(무인해상선박)가 페르시아만 등 위험 해역에서 수상한 민간인 선박들을 조사, 수색하고 있다. 스파르탄 스카우트는 48시간 동안 자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센서와 GPS 및 12.7㎜ 기관포도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확한 탐지능력과 반격능력보다도 더 높이 평가받는 무인화 시스템들의 장점은 역시 ‘폭파돼도 아군의 인명피해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정황이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우리 해군도 USV가 대거 투입돼 위험 지역을 순찰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사망자 46명이라는 끔찍한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아직은 무인화시스템이 걸음마 수준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기본적인 USV가 1대도 없는 실정이다. 로봇공학 관계자는 “USV를 그저 ‘원격조종기와 통신장비를 달아 둔 모터보트’ 정도로만 여기는 군 인사들이 더러 있어 적극적이고 과감한 지원이 부족하다”며 “실험적 연구야 하고 있지만 결국 실전에서 사용했어야만 천안함 등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첨단 USV를 미리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무인화 시스템 개발을 사실상 도맡아 하고 있는 국방무인화특화연구센터의 경우 2013년까지 24개 과제에 48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 펜타곤이 이라크전에서 활동할 폭발물제거 로봇 등을 위해 투입한 61억달러(7조3320억원)에 비하면 턱없는 규모다. 센터 관계자는 “이 정도 예산으로는 매년 수백억원 이상을 연구와 투자에 집중하는 선진국들의 무인화 시스템 개발을 뒤따라가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궁극적인 목표 중의 하나인 인명피해 방지는커녕 기본 플랫폼 개발이나 인공지능 네트워크 구축도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인화 시스템 개발에 대한 의지도 문제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국내에서 무인화 시스템 개발이 진행중이지만 딱히 내놓을 만한 게 없다”며 “무인화 시스템을 더욱 추진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들이 있지만 너무 앞서 나가는 의견이며 효율적이지 못해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단언했다.
세계적인 IT 및 첨단기술분야 선두주자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무인화 시스템의 정착 및 추진이 여전히 더딘 이유로 ‘기득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을 지목하는 시각도 있다.
로봇공학 분야 관계자는 “일부 군사 관련 고위직들은 로봇이 군사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수록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껴 사사건건 반대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학자들과 연구자들은 무인화 시스템은 공격형 군사로봇이나 무인기기에만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 활용분야가 많기 때문에 국가적인 과감한 투자와 인력유치가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관계자는 “무인화 시스템은 단순히 전쟁에서 기계로 적군을 물리쳐 유리하게 승리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어떠한 분쟁이 일어나도 인명피해를 막고 대전쟁이 일어나도 인간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모든 기계·전자통신·물리학 등 모든 학문의 집합”이라고 강조했다.
/kueigo@fnnews.com김태호기자
■사진설명=KAIST 국방무인화특화연구센터에서 지난 2008년 1차 개발을 완료한 지네형 로봇. 지네의 이동 특성을 모방, 험지 주행을 목적으로 개발해 정찰 등의 목적으로 이용 가능하지만 상용화하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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