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1일이면 19대 총선이 치러진다. 이번 총선은 연말 대선과 곧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국가의 미래 권력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그 사회의 주체로서 공동체의 미래 운명을 결정짓는 뭔가를 계속하게 된다. 특히 시민들의 정치적인 결정은 그 공동체의 미래 운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총선이 단순히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권력을 차지하느냐는 차원을 떠나 국가 운영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시대적 의미를 안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또 이번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 중 어느 당이 승리할까, 어떤 후보가 당선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체제의 원리를 한 번쯤 살펴보는 게 우선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공동체의 주요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체제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다수의 노예노동의 착취를 근간으로 했고 사적 영역에서 가부장적 지배가 이루어졌다. 또 에게해 주변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수탈에 의존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현대사회가 본받을 만한 정치체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테네 민주주의 체제가 현대사회에서도 '존경'을 받는 것은 그 체제를 이끌어가는 내부 메커니즘의 정통성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지배 엘리트 계층과 시민계층의 의사소통을 통해 공동체 미래운명에 대처하는 정당화된 시스템을 결정하는 일이다.
지난 몇년간 한국사회가 소통의 리더십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 왔다기보다는 불통의 리더십으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왔다는 점에서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가 이룩한 내적 갈등의 해소 메커니즘을 살펴보는 것이 이 시점에 더욱 중요해 보인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부유한 자들, 현명한 자들, 중농과 빈농, 그리고 노동계층으로 구성된 보통시민들이 각각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였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부유한 자들에게 도시의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부여했다. 아테네 부자들은 그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여 많은 재산을 공동체의 복지에 기여했다. 국가는 이 돈으로 폴리스(polis)에 필요한 사회간접시설을 만들고 국가의 문화행사 비용을 지불했으며 전쟁에 필요한 배를 건조하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했다.
현명한 자들은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했다. 지식인들은 공동체의 미래 운명에 대한 필요한 조언을 다수 대중인 시민들에게 해주었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다중인 시민은 민회를 통해 공동체의 미래 안건을 결정하는 일에 참여하고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에 기여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다수의 시민이 전투와 국정참여에 참여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주도된 아테네 민주주의는 또한 계층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름의 '민주적 통제' 방식을 고안해 냈다. 중간계층이나 노동계층의 정치적 요구가 폭력적인 투쟁수단으로 격화되는 것을 막거나, 귀족들이 이들 시민의 요구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막도록 하는 최소한의 시스템 마련에 노력했다. 또 부유한 자들이나 현명한 자들이 탐욕스러워지거나 사욕을 채우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에도 노력했다. 시민들은 도편추방을 통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만한 귀족들을 견제했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동반한다. 그래서 시끄럽다. 한 사회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력들 간 극심한 갈등을 보인다면 그 갈등을 조정하고 통제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한데 민주주의는 그런 제도들 중에 가장 합리적인 제도로 판명이 났다.
기원전 500년 쯤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아테네 민주주의는 현대 민주주의도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지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놀랍기까지 하다.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 개발과 보존, 자유와 평등, 안보와 남북화해 등 모든 사회적 가치마다 대립구도가 첨예화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올해 열리는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우리 모두의 공동체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인 시민들은 4·11 총선을 앞두고 누구에게 투표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우선 민주주의의 원형인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를 다 함께 되짚어 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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