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1025-with or without person'
인간이 남긴 최초의 그림은 동굴에 새긴 동물 벽화다. 이집트, 그리스 등 고대문명이 남긴 미술품에도 동물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또 19세기 프랑스에는 동물 그림만을 전문으로 그리는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다.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에 재학 중인 양정선씨(27)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진지하게 탐구한 'BeLonging, 속하거나 혹은 갈망하거나'라는 제목의 전시기획안을 내놓았다. 양씨는 "12년 동안 함께했던 반려견 '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하면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유대감도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기계적으로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유기견을 위한 안내표지판' 같은 작업을 펼치고 있는 함영미와 유기견 목조각을 내놓은 윤석남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개들을 통해 소외되고 버려진다는 것의 의미와 인간들의 자기중심적인 문화의 일면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천착한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 그리고 생명존중에 대한 메시지 등이 이들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강홍구와 이상규, 김희정의 작품은 어린시절 경험했던 동물과의 유대 혹은 그 기억이 작업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강홍구의 사진은 어린시절 가족과도 같았던 소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상규의 '트라우마' 시리즈는 유리병 안에 갇혀 죽어가는 새들을 통해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로만 대하는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비판한다.
이상규 'Trauma'
최민건, 이유미, 최형섭은 인간들에게 인류학적으로 가장 친근한 존재인 '개'를 매개로 복잡미묘한 인간의 세계를 탐구한다. 최민건은 도시를 떠도는 한 마리 개를 통해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주고 '블랙 독(Black Dog)' 시리즈의 이유미는 검은 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대인의 우울한 심상을 투영한다. 또 거만한 개의 형상을 통해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을 고발해온 최형섭은 동물의 가죽과 뼈 등을 재료로 한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을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한편, 사진작가 조습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이슈와 담론 등을 기획자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같거나 혹은 다른 관점을 가진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얻어진 내용은 작가 고유의 작업방식을 거쳐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게 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양정선씨는 "이번 전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들(동물)을 대신한 작가 9명의 이야기인 셈"이라면서 "9명의 작가들이 펼쳐놓은 이야기를 통해 생명 존중에 대한 경각심을 조금이나마 일깨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10명의 큐레이터가 제시하는 10개의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10 Curators & 10 Futures'전은 오는 29일부터 7월 2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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