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마스터스 2라운드가 끝난 후 미카 미야자토(일본)가 8언더파로 단독 선두, 리디아 고(뉴질랜드 동포)와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이 1타 뒤진 공동 2위를 이뤘다. 첫날 경기가 폭우로 취소돼 에비앙 마스터스는 3라운드 승부로 축소됐는데, 선두권 3명이 1타 차 혼전을 벌여 전문가들도 우승을 점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필자는 페테르센의 우승을 점찍었다. 에비앙 현지 소식을 전혀 모르지만 시차에 잘 적응한 페테르센의 컨디션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직감에서였다. 페테르센의 고국인 노르웨이와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에비앙은 시차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페테르센은 홈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편안히 라운딩에 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에비앙은 7시간, 뉴질랜드와 에비앙은 10시간 차이가 나 미야자토와 리디아 고는 긴장감과 피로에 시차 부적응까지 겹쳐 마지막 날엔 고전이 예상됐다. 결과는 페테르센의 2타 차 우승.
미국프로골프(PGA) 입문 24년차에 프로골퍼로서는 환갑의 나이인 43세의 짐 퓨릭(미국). 그는 지난 14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BMW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꿈의 59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회가 유럽에서 열렸다면 과연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까. 짐 퓨릭 이전에 59타를 친 엘 가이버거(1977년), 칩 벡(1991년), 데이비드 듀발(1999년), 폴 고이도스와 스튜어트 애플비(이상 2010년) 등 5명도 미국인으로 모두 '안방'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나란히 금자탑을 쌓았다. 이들 역시 유럽에서 뛰었다면 '꿈의 기록'을 수립하기 힘들었을 것.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면 잠을 설치게 돼 근육을 뒤틀리게 하는 젖산이 과다분비되고 샷은 엉망이 된다. 따라서 잠을 푹 자느냐, 못 자느냐에 따라 우승 향방이 결정지어진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로 활약했고 통산 최다 완투(100경기)에 빛나는 윤학길은 '1회 징크스'에 시달렸다. 윤학길은 1회에 뭇매를 맞는 편이었으나 2회부터는 제 컨디션을 되찾아 9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윤학길의 1회 부진은 수면부족 탓이었다.
선발 등판을 앞두고 주요 타자들과의 대결 등 온갖 걱정에 휩싸여 매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부인이 한두 시간 동안 팔다리 마사지를 해주면 새벽 3시쯤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수면부족으로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라 1회에 실점을 많이 했으나 이후엔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적 각성수준'에 도달해 공을 씽씽 뿌릴 수 있었던 것.
17일 애리조나전에서 류현진(LA다저스)은 1회 골드슈미트에게 선제 2점 홈런을 맞아 또 '1회 징크스'에 울었다.
류현진은 올해 통산 28경기에서 평균 자책점 3.03을 기록했으나 1회 평균 자책점은 50% 이상 높은 5.14로 골프의 1번홀 드라이버 입스(실패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은 1회 부진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인 만큼 만나는 타자들이 모두 낯설어 선발 하루 전날 투구패턴 궁리 등 온갖 걱정에 시달릴 것이다. 잠을 쉬 이루지 못해 윤학길처럼 1회에 안타와 홈런을 맞아야 '정신이 번쩍 드는' 슬로 스타터가 된 것.아마추어 골퍼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 대개 ±5타의 기복이 있다. 5타를 줄이느냐, 늘리느냐는 충분한 수면이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라운딩 하루 전날 어떻게 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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