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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상앙, 대처, 박근혜

[곽인찬 칼럼] 상앙, 대처, 박근혜

위앙은 찬사와 손가락질을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창칼이 난무하던 중국 전국(戰國)시대에 그는 진(秦) 효공 아래서 정승을 지냈다. 위앙은 법을 추상같이 집행했다. 백성을 다섯 집 또는 열 집씩 묶어 서로 감시하고 법을 어기면 고발하게 했다. 못 본 체하다 걸리면 연좌 처벌했다.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적병의 머리를 베어오면 1계급 특진시켰다. 중앙집권적인 군현제의 틀도 짰다. 위앙이 다스리는 동안 진나라는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필 세자가 위앙의 법을 어겼다. 사형 선고를 받은 왕족을 숨겼다 들킨 것이다. 범죄자 은닉은 중형이다. 차마 세자를 벌할 수 없던 위앙은 세자의 보좌진에 본때를 보였다. 한 명은 코를 베는 비형(鼻刑), 또 한 명은 얼굴을 뜨는 묵형(墨刑)에 처했다. 백성들은 벌벌 떨었다.

법가(法家) 위앙의 개혁을 상앙변법(變法)이라 부른다. 위앙이 상앙이 된 연유는 이렇다. 위앙이 이웃 위(魏)나라를 쳐 땅 700리를 차지했다. 이를 장하게 여긴 진 효공은 위앙에게 상어(商於) 등 열다섯 고을을 하사하고 상군(商君)이란 칭호까지 내렸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위앙을 상앙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상앙의 권세도 시들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봐주던 진 효공이 죽고 세자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진 혜문공이다. 혜문공은 오래전의 수치를 잊지 않았다. 목숨에 위험을 느낀 상앙은 급히 달아났다. 상앙이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다. 여관에 들어갔더니 주인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상앙이 없다고 하자 주인은 "너를 재웠다간 상군의 법에 따라 나까지 참형을 면할 수 없다"며 쫓아냈다. 제가 만든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격이다. 결국 상앙은 진나라 군사들에게 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작년 4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사망하자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처 시대의 마감을 자축했다. 그야말로 '축 사망'이었다. 런던 거리 담벼락엔 "당신은 우유와 우리의 희망까지 날치기했다"는 그림이 걸렸다. 인디펜던트지는 대처리즘을 국가적 재난이라고 혹평했다. 유럽에서 가장 평등했던 나라를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만든 장본인이 대처라고 꼬집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엔 발레에 재능을 가진 11세 소년 빌리가 나온다. 광부인 빌리의 아버지는 탄광 폐쇄에 맞서 파업 중이다. 겨울이 오고 날이 추워지자 아버지는 죽은 아내가 아끼던 피아노를 부숴 불을 땐다. 빌리는 훌륭한 발레리노가 되는 게 꿈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돕기 위해 배신자 비난을 무릅쓰고 탄광에 복귀한다. 1980년대 영국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에게 대처는 악녀다.

그런 대처를 다른 쪽에선 공산주의에 맞선 '철의 여인', 불법과 타협하지 않는 신념의 화신으로 추앙한다. 지금도 대처리즘은 시장경제의 보루로 레이거노믹스와 쌍벽을 이룬다. 대처의 장례식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참석했다. 여왕이 몸소 총리 장례식을 지켜본 것은 1965년 윈스턴 처칠 사망 이후 처음이다.

작년 말 철도파업 때 박근혜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앞세워 대처 식으로 대응했다. 전략은 주효했다. 노조는 무릎을 꿇었다.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 그중에서도 공기업 개혁을 강조했다. 빚더미 공기업들은 각오해야 한다.

법과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다만 상앙이나 대처처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은 은근히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덕을 봤다. 우아한 한복 맵시와 온화한 자태는 천생 모녀다. 그런데 집권 후 박 대통령의 얼굴에서 육 여사가 사라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남은 건 딱딱한 아버지의 모습뿐이다. 기자회견도 너무 딱딱했다.
나는 박 대통령의 얼굴에서 양친의 모습을 모두 보고 싶다. 상앙과 대처는 박수도 받지만 미움도 샀다. 박 대통령이 때론 두 사람을 롤모델로 때론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