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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스타장관을 보고 싶다

[곽인찬 칼럼] 스타장관을 보고 싶다

재상 위징(魏徵)이 당(唐) 태종에게 항명했다. 임금이 장병 징집령을 내렸는데 신하가 임금의 명령을 적은 조서(詔書)를 틀어쥐고 집행을 거부한 것이다. 화가 치민 태종이 위징을 불러 다그쳤다. 그러자 위징이 간했다. "연못 속 물을 말리면 이듬해 물고기를 잡을 수 없고, 숲을 태우면 짐승을 잡을 수 없습니다. 장정이 모두 군대를 가면 세금과 부역은 어쩔 셈입니까?" 잘못을 깨달은 태종은 곧 명을 거둬들였다. 그 임금에 그 신하였다.

원래 위징은 태종 이세민의 적이었다. 이세민은 당 고조의 차남이다. 위징은 장남 이건성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왕위 다툼은 이세민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세민이 붙잡혀온 위징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 형제 사이를 이간질했는가?" 위징이 말했다. "태자의 참모였으니 당연히 그분을 위해 계책을 내놓았을 뿐입니다." 위징의 의연함과 충성심에 감동한 이세민은 위징을 제 측근으로 삼았다.

위징을 재상으로 등용한 태종은 정관지치(貞觀之治)의 태평성대를 열었다. 태종이 신하들과 치국평천하를 논한 책이 '정관정요(貞觀政要)'다. 위징은 직간으로 유명하다. 다른 신하들이 임금의 치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할 때 위징은 열 가지 결점을 지적했다. 태종은 이를 병풍에 새겨 좌우명으로 삼았다. 정관지치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오늘날 태종은 관용과 겸허의 상사 리더십, 위징은 강직과 충성의 부하 리더십 모델로 꼽힌다.

중국 제왕학의 기초를 놓은 한비자(韓非子)는 말한다. "현군은 신하가 스스로 자기 생각을 말하고 지혜와 용맹을 발휘하도록 한다." 이런 말도 했다. "하군(下君)은 본인 한 사람의 지혜와 힘을 모두 소진하고, 중군(中君)은 사람들이 힘을 모두 발휘하도록 하고, 상군(上君)은 사람들이 지혜를 모두 발휘하도록 한다." 요컨대 중지(衆智)를 모으는 것이 임금 된 자의 도리라는 것이다.

중지를 모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권력자의 금도(襟度)는 필수다. 앞가슴의 옷깃을 흉금(胸襟)이라 한다. 금도는 흉금의 폭을 말한다. 여기서 흉금은 마음 속 생각, 금도는 도량을 뜻하게 됐다. 아랫사람이 싫은 소리 한다고 버럭 역정을 내면 말짱 헛일이다.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가 왕망을 무찌른 뒤 왕망이 살던 궁에서 편지 뭉텅이를 발견했다. 관원과 지방 유지들이 왕망을 칭송하고 유수를 헐뜯는 내용이었다. 그 자체가 살생부였다. 하지만 유수는 관원과 호족들을 불러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편지를 불살랐다. 이를 분소밀신(焚燒密信)이라 한다. 광무제의 금도는 잠재적 적대세력을 감복시켰다.

박근혜정부가 오늘로 꼭 1년을 채웠다.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만기친람형이다.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뜻이다. 만기친람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정사에 무관심한 대통령보단 퇴근 후에도 보고서를 훑어보는 성실한 대통령이 낫다. 국정 수행 지지율도 높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장관들이 안 보인다. 책임장관제는 실종됐다. TV 속 장관들은 수첩에 뭔가 적고 있다. 초등학생도 안 하는 짓을 장관이 한다. 참 민망하다. 박근혜정부에선 당태종·위징과 같은 능동적인 팀워크를 볼 수 없다. 대통령은 남산만 한데 장관들은 콩알만 하다. 다들 주눅이 든 거 같다. 당연히 스타 장관도 없다. 청와대는 뿔이 났다. 주요 법안이 국회에서 퉁퉁 불어터지고 있는데 장관들이 꿈쩍도 안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말 모른다면 청와대가 문제다.

앞으로 4년 남았다. 남은 기간 장관들이 마음껏 능력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면 좋겠다. 야구로 치면 3회 초다. 1·2회는 불안했지만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 '상군'은 혼자 다 하지 않고 신하들의 지혜를 활용한다.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소동파는 대지약우(大智若愚)라 했다.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듯 보인다는 뜻이다. 무식쟁이 건달 유방이 지략가 용장 항우를 꺾었다. 최후의 승자는 어리석은 척 포용하는 자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