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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금융지주를 해체하자

[곽인찬 칼럼] 금융지주를 해체하자

"한국 금융은 과거 행태에 안주하고 있어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역량이 부족하고 금융업 자체의 경쟁력도 낙후돼 있다." 누가 한 말일까. 다름 아닌 금융위원회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나온 말이다. 금융위는 한국 금융의 문제점을 족집게처럼 짚는다. 담보·보증에 의존한 보신주의, 우물 안 개구리 식 출혈경쟁, 금융소비자를 도외시한 그들만의 리그. 그런 다음 대책을 내놓는다. 먼저 금융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린다는 비전이 나오고 미션과 목표가 제시된다. 금융권 인수합병(M&A) 촉진,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등 흠잡을 데 없는 대책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리곤 끝. 그게 다다.

싱겁다. 뭔가 빠졌다. 그게 뭘까. 금융위는 모피아, 관치, 낙하산 인사에 대해선 입을 꼭 다문다. 한국 금융이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이유를 세상이 다 아는데 금융위만 애써 모른 척한다. 모피아는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원조급이다. 금융위는 진정 모피아를 척결하지 않고도 한국 금융이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그럴 수 없다는 증거는 숱하게 많다.

세상 물정 모르는 KB금융지주·국민은행이 살아 있는 증거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지주 회장, 은행장·감사가 동네 사람 다 보는 앞에서 집안싸움인가. 셋은 하나같이 관치 낙하산의 불명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 차원에서 관피아 척결을 다짐했다. 검찰 중수부장 출신인 안대희 총리 내정자는 "적폐를 일소하고 비정상적 관행을 제거하겠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국민은행은 스스로 미끼를 덥석 물었다.

금융지주사는 올해로 14년 됐다. 뜻은 좋았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보험·증권·카드·자산운용사를 한 우산 아래 둬 시너지 효과를 내려 했다. 지주사엔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겼다. 계열사 간 업무조율도 지주사 몫이다. 잘만 하면 한국 금융의 선진화 꿈도 이뤄질 것 같았다.

현실은 딴판으로 돌아갔다. 지주사는 옥상옥이 됐다.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은 사사건건 으르렁거렸다. 시너지 효과는커녕 직원들 사기만 떨어뜨렸다. 낙하산이 원인이다. 회장이 타고 내려온 줄과 행장이 타고 내려온 줄이 다르다. 믿는 구석이 따로 있으니 소 닭 보듯 한다. 시너지는 무슨, 동네방네 시끄럽게만 안 해도 다행이다. 금융계 VIP 대접을 받으며 적당히 임기만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상관할 바 아니다. 은행을 뺀 증권 등 다른 자회사들은 도대체 왜 지주사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입이 삐죽 나왔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지주사를 없애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번듯한 지주사 회장 자리를 놓치기 싫어서다. 회장직은 모피아와 정피아(정치권 낙하산)에게 번갈아 돌아갔다. 전직 차관에게 지주사 회장만큼 빛나는 자리는 찾기 힘들다. 금융지주가 모피아·정피아의 밥으로 전락한 사이 한국 금융은 거꾸로 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무한경쟁 속에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동안 금융은 골목대장 놀이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몰랐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낙하산을 접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퇴직 후 안락한 노후를 놓치기 싫어서다.

옥상옥 금융지주는 대리인 비용을 상승시킨다. 은행의 진짜 주인은 돈을 맡긴 필부필부들이다. 은행 임직원은 예금주의 돈을 관리하고 대가를 받는 대리인일 뿐이다. 은행업이 원초적으로 면허산업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하는 일 없이 말썽만 일으키는 낙하산 회장·행장은 수십억원대 연봉·퇴직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

금융지주 실험은 실패다. 세월호 탑승자 구조에 실패한 해양경찰은 해체 운명을 맞았다. 제 역할을 못하는 금융지주는 해체하는 게 낫다. 낙하산은 적폐다. 국가개조하듯 금융도 개조하자. 금융권을 '모피아 프리 존'으로 선포하자. 관 주도 시대는 외환위기 때 끝났다.
더 이상 끼리끼리는 안 된다. 똑똑한 인재가 민간에 수두룩하다. 그들을 믿고 맡기자. 한국 금융, 정말 이대론 안 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