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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칼럼] 구원투수 최경환

[곽인찬칼럼] 구원투수 최경환

야구에서 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 공을 던져 3점 이내로 막는 것을 퀄리티 스타트라 한다. 메이저리그 LA다저스 소속의 류현진이 그런 투수다. 보통 선발이 6, 7회까지 제 몫을 다하고 내려가면 그 뒤를 구원·마무리 투수가 잇는다. 이게 승리공식이다. 종종 9회까지 완투하는 투수도 있다. 이런 투수는 감독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선발의 조기 강판은 감독에겐 고통이다.

미국 재무장관들은 완투할 때가 많다. 초대 알렉산더 해밀턴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아래서 6년 동안 재무장관을 지냈다. 제75대 티모시 가이트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4년을 꼬박 같이 보냈다. 현 76대 제이컵 루 역시 별 사정이 없는 한 4년을 채울 공산이 크다. 오바마는 제44대 대통령이다. 건국 이래 미국 대통령은 44명인데 재무장관은 76명이 배출됐다. 그렇다고 재무장관이 수시로 갈린 것은 아니다. 미국엔 8년 통치하는 연임 대통령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적어도 두 명의 재무장관을 임명한다.

미 재무장관은 우리로 치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5년 대통령 단임제 아래서 한국의 경제 사령탑은 쉴 새 없이 바뀌었다. 김대중정부는 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전윤철 등 5명을 배출했다. 재임기간 평균 1년이다. 노무현정부는 김진표·이헌재·한덕수·권오규 등 4인이다. 평균 재임기간 1년3개월이다. 이명박정부는 그나마 적다. 강만수·윤증현·박재완 3인이니까 평균 20개월씩 근무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장관을 자주 바꾸는 걸 싫어한다. 올해 초 신년회견에서 기자들이 개각 여부를 묻자 "정국전환이나 분위기 쇄신용 개각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역대 정부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14개월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현오석 부총리가 몇 차례 실수를 했을 때도 감싸고 돌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는가. 세월호 사고가 일거에 모든 것을 바꿨다. 박 대통령은 결국 7개 부처 장관을 교체했다.

경제부총리에 최경환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기용한 것은 다행이다. 그는 친박 실세다. 이명박정부에서 지식경제부(현 산업부) 장관을 지내 정·관계 경험이 풍부하다. 현오석 부총리는 컨트롤타워로서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근혜정부에서 최 부총리 후보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이왕 부총리직을 부활했으면 진작에 이런 인물을 앉혔어야 했다.

지난 2월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담은 대국민담화에서 "천추의 한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금씩 걸음을 떼어서는 안 된다. 한꺼번에 힘을 모아 도약해야 한다"고도 했다. 경제 수장에겐 각자 시대적 소명이 있다. 최 후보의 소명은 대통령 담화에 요약돼 있다. 더 줄이면 담대한 변화다.

나는 최 후보가 200여년 전 북학파 박제가의 뜻을 되새기면 좋겠다. 박제가가 청나라를 다녀와서 쓴 '북학의(北學議)'는 "조선 사회에 던진 충격적인 보고서"란 평가를 받는다(임용한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박제가는 상업을 멸시하고 쇄국으로 치닫는 허풍쟁이 조선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제가를 비롯한 실학파의 뜻이 관철됐다면 이후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경제 수장 인사에 관한 한 이명박정부는 괜찮은 모델이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선발' 강만수가 물러났다. '구원'에 나선 윤증현은 위기관리에 남다른 수완을 보였다. '마무리' 박재완은 다른 나라들이 흥청망청 돈을 쓸 때 고독한 재정투사를 자임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현오석 부총리는 강판 직전이다. 최 후보는 곧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 9회까진 6이닝 이상 남았다. 사실상 선발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마운드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리다. 때론 스트라이크를 잡아 박수를 받겠지만 때론 난타를 당할 수도 있다. 맘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래야 한두 이닝만 막고 교체되는 단순 구원투수를 넘어 마무리역까지 완수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에선 경제수장이 2명으로 그치길 바란다. 순서로 봐도 2명이 나올 차례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