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수다르스키 전 아부다비투자청 CIO. 사진=박범준 기자
"한국 사모펀드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국민연금 등 대규모 자산 보유 기관들이 기업가정신을 갖고 사모펀드 회사와 인재 양성을 위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조지 수다르스키 전 아부다비투자청(ADIA)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달 28일 '제12회 서울 국제파생상품컨퍼런스' 기조연설 직후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파이낸셜뉴스와의 대담에서 한국 대체투자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같이 조언했다. 그는 1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을 이끌었던 수장답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막힘 없이 한국의 대체투자 시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특히 한국 경제 규모에 맞는 대체투자 활성화를 위해 연기금들이 대체투자시장 인프라 구축에 헌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담 = 신홍범 금융부장
―최근 글로벌 경제에서 연기금의 대체투자 확대가 트렌드다. 전망은.
▲대체투자 확대는 한마디로 아주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우선 연금펀드 등 자산 보유자들은 가능한 한 자산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한 번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체로 자산 보유자들은 원금 손실 리스크가 없는 자산인 채권부터 투자를 시작한다. 이어 채권이 익숙해지면 주식에 투자한다. 주식은 더 높은 수익을 주지만 원금을 잃을 수도 있다. 더 많은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주식도 익숙해지면 자산가들은 또 다른 자산 클래스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헤지펀드, 부동산, 사모, 인프라 등을 포함하는 대체투자다. 자산 클래스에서 더 많은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다각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다각화의 결과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얻는다.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대체투자는 그만큼 리스크도 있지만 반드시 위험부담이 큰 것만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 정부도 지금껏 채권에만 투자하다가 최근 부동산 등 투자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주식과 채권처럼 쉬운 자산 클래스에서 시작해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대체투자 영역에 들어갔다. 이런 점을 볼 때 대체투자 확대는 분명히 긍정적이다.
―아시아, 유럽 등 지역별로 투자종류나 목적에 대한 차이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 차이와 유망하게 보는 대체투자 시장이 있다면.
▲대체투자 분야는 확인되지 않는 요소들이 많아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장 좋은 진입 방법은 이미 제도가 성숙하고 정착된 시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사모펀드를 예로 들면 미국은 사모 분야에 대해 법치를 확립했다. 이는 사모 거래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무척 중요하다. 따라서 사모에 진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미국 시장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미국이 반드시 높은 수익을 보장하진 않겠지만 가장 안전한 사모 시장이라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유럽 시장이 있다. 이와 달리 아시아 시장은 분석하기 어렵다. 아시아 시장은 자금흐름의 시스템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대답이다. 이제 투자에 가장 유망한 지역이 어디냐는 질문에 답하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투명하지 않은 시장을 찾는다. 기회라는 것이 모두에게 알려진다면 수익을 거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숨겨져 있거나 드러나지 않은 시장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는 '이머징마켓'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머징마켓은 자본시장 부문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국가들의 신흥시장을 말한다. 훗날 사모를 위해 제일 유망한 시장은 이머징마켓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100% 확실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안전성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머징마켓들은 법에 의한 지배가 약하다. 그 결과 투자 전에 본 기회가 무척 매력적이었더라도 이머징마켓의 다양한 문제점을 겪고 나면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한국도 한국투자공사(KIC)가 업무영역 확대 등 국부펀드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면.
▲투자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점에서 KIC 등 다른 기관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KIC 조성 초기 시절인 5~6년 전 그곳을 방문해 당시 직원들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말했던 것을 반복하고자 한다. 우선 조직이 업무영역을 확대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안정성이다. 나는 KIC의 CIO들을 알고 있었지만 3년이 지나자 그들의 임기는 모두 끝나버렸다. 3년마다 새로운 CIO가 부임했는데 이런 순환보직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법적·정치적 이유가 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한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아부다비투자청에서 10년 이상(정확히는 11년) 일한 덕분에 우수한 지역인재들을 이끌 수 있었다. 또 15~20년간 같이 근무한 동료들도 있었다. 이는 그 기관이 얼마나 안정돼 있는가를 증명해준다. 아울러 팀에 대한 보상(인센티브 지급)도 중요하다. 구성원들은 조직의 충성심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을 때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KIC와 아부다비투자청 등 국부펀드 간 협력 가능성과 기대효과가 있다면.
▲과거 협력 시도가 몇 차례 있었던 걸로 안다. 그런데 기관 간 협력은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각 기관은 서로 다른 비밀과 보안 수준을 갖추고 있고 각각의 국부펀드는 국가적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자기 국가의 임무를 함께 나눈다는 걸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부다비투자청이 KIC의 적합한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친구가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다. 두 기관이 각기 다른 국가 기관이어서 어쩌면 보다 넓은 범위의 협력으로 가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양 기관은 국부펀드에서 협력을 시작해서 외교나 경제 관계에 관한 다른 협력으로 이어갈 수도 있다. 합작 투자를 할 수도 있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국이고 아부다비는 산유국이다. 분명 훌륭한 합작투자와 협력을 위한 좋은 조건이 갖춰져 있다.
―최근 국내시장에서도 사모펀드가 인수합병(M&A) 등 투자은행(IB)의 주요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시장 활성화라는 장점과는 별개로 투자금 회수 어려움 등 이에 따른 문제점도 나오는데 앞으로 전망은.
▲사모펀드는 은행, 투자은행, 소비자신용기관 등 각종 금융서비스 업체에 투자할 수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물론 펀드 매니저들이 금융서비스 산업에 관해 잘 알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우리도 KB국민은행 등 여러 한국 기관에 사모 거래를 통해 투자한 바 있다. 만약 사모펀드가 자산관리라는 역할을 떠나 단순히 M&A 등 IB업무 분야에 진출하는 경우에 국한한다면 투자자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만약 투자자라고 해도 자산 관리자가 좋은 투자처나 회사의 출구전략(company's exiting) 등을 찾는 데 투자하길 원하지 다른 곳에 돈이나 자산을 투자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사모 시장이 활발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시장에서 사모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국 시장엔 실제 활성화된 사모펀드가 얼마 없다. 한국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적어도 15개 이상의 시장 참여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선 사모 회사를 만들고 공동체에 기여할 사람들을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투자자들이 사모펀드를 키울 의지가 있어야 한다. 투자자 측면에서 한국 시장은 양분화돼있다. 국민연금이라는 거인이 있고 KIC라는 두 번째로 큰 투자가가 있다. 또 여러 보험사들과 더욱 작은 규모의 연금 펀드가 있다. 만약 한국의 자산 소유자들이 시장 변화를 위해, 혹은 변화를 위한 촉매 역할을 위해 더 많은 사모 운용사를 원한다면 이들 자산 소유자들부터 신규 매니저 양성을 도와야 한다. 신규 매니저는 회사에서 교육받아 성장한 뒤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렇게 사모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한국도 이런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특히 대형 자산 보유자들은 한국 공동체와 경제를 위해 이 같은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신규 사모펀드 회사는 그들이 관리할 만한 충분한 자금이 조성되기 전까진 만들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모 활성화의 요점은 규제나 기간 내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와 자금 지원, 그리고 기업가정신에 있다.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데 실제상황은 어떤가.
▲사실이다. 카타르와 마찬가지다. 카타르는 천연가스 자원이 풍부한데 인구는 적어서 쓸 수 있는 돈이 무척 많다. 국외 지출은 물론이고 국내도 인프라, 호텔, 숙박시설, 교통시설, 2020 월드컵 시설 등으로 지출이 많다. 같은 일이 아부다비와 두바이에서도 일어난다. 기름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이 경제활동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또 두바이의 민주화는 곧 두바이의 개방을 뜻한다. 외국인 근로자, 기업 본부, 다국적기업 등이 두바이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투자와 거주에 좋은 환경을 갖춰나가고 있다.
정리=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김종욱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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