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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묘한 기름값, 더 묘한 유류세

[이재훈 칼럼] 묘한 기름값, 더 묘한 유류세

이명박정부는 기름값에 유달리 집착했다. 국내 가격을 잡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유가 급등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본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후보였던 2007년 부동산세, 법인세와 함께 유류세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취임하자마자 유류세 10% 인하를 단행해 10개월간 시행했다. 그러나 끝 모르고 치솟는 국제유가에 유류세 인하 효과는 이내 희석됐고 정부는 2조원에 달하는 세수만 탕진한 꼴이 됐다.

4년 전인 2011년 1월 이 대통령은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또다시 기름값 인하를 압박했다. 이번에는 정유·주유소업계가 표적이었다. 그는 국민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요즘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의 행태가 실로 묘하다"고 언급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를 받아 "내가 공인회계사다. 정유사 장부를 다 살펴보겠다"고 떵떵거렸다. 정부가 업계에 대한 전방위적인 담합조사에 나서자 업계도 백기를 들었다. 그해 4월부터 3개월간 L당 100원 내렸으나 이 또한 약발이 별로 없었다.

최 전 장관의 호언과 달리 정부는 결국 석유의 원가 및 유통 구조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서 관치형 알뜰주유소 도입, 혼합판매 허용 등 여러 가지 수단을 썼지만 부작용이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 가격은 일반 주유소와 별 차이가 없어졌다. 이 전 대통령의 '묘한 기름값' 발언 이후 정부의 유가인하 정책은 시장 개입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정부가 또다시 석유업계에 대해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9일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일부 주유소가 국제유가 인하분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일련의 과정이 이명박정부 때와 판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휘발유 가격 등에 적시 반영되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유가 하락분이 가격에 적절히 반영돼야 소비자의 구매력과 실질소득이 늘고 내수가 활성화돼 우리 경제의 선순환 구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자충수를 둔 것 같다. 기름값 양상이 과거와 전혀 다르다. 업계는 "국내 기름값은 내릴 만큼 내렸다"며 "기름값 추가 인하를 막고 있는 유류세를 내려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묘한 기름값'이 아니라 '묘한 유류세'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제 휘발유 가격은 L당 455원으로 지난해 초보다 327원 내린 반면 같은 기간 정유사의 세전 휘발유 가격은 877원에서 541원으로 336원이나 내렸다. 정유사나 주유소나 마진을 챙길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국제유가가 급락해도 기름에 붙는 세금은 요지부동이다. 유류세는 가격에 관계없이 붙는 정액세이기 때문이다. 현재 휘발유 1L에는 교통세 529원에 교육세·주행세 등 총 745원의 유류세가 붙고 세후가격에 10%의 부가세까지 따른다.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값 1565원을 기준으로 하면 세금만 936원에 달한다.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 비중은 1년 전 49%에서 현재 60%로 높아졌다.

기름값이 내리면 누구보다 정부가 가장 큰 혜택을 본다. 세금이 정액제다 보니 유류소비 증가에 따라 세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 뻔하다. 교통·교육·주행세 등 유류세 3종 세트의 수입만 21조원(2013년)이다. 세수펑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큰 수입원인 유류세를 인하할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는 일부 주유소가 여전히 높은 값을 받고 있다고 몰아붙이고 있지만 의미가 없다. 일반 소비자들은 값싼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고 있어서다.


결국 정부가 기름값을 더 내리려면 유류세를 내리거나 최소한 종량세 구조를 종가세로 바꾸는 조치를 해야만 한다. 저유가에 신음하는 정유사나 주유소를 두드려봐야 무엇을 얻어내겠나. 유류세 인하가 안 된다면 가격 인하 압박을 거둬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부가 본전을 되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